2007년 8월 28일 화요일

마시멜로 이야기 - 뻔한 교훈의 가치

한동안 9시 뉴스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책이다.

자기계발서는 되도록 멀리하는데, 집에 굴러다니기에 호기심에 읽어 봤다. 동생이 군복무할 때 산 책인 모양이다. 앞의 몇 줄을 읽어볼 요량으로 뒤적이다보니, 어느덧 책의 중반이다. 정말 쉽게 읽힌다. 큼직큼직한 활자, 쉽고 교훈적인 내용에, 얇은 두께까지! 대한민국 베스트셀러의 필수 조건을 두루 갖췄다. 읽을거리가 없는 읽을거리. 최소한의 지적 투자로 책 한 권 독파했다는 뿌듯함! 게다가 엄청난 광고 공세로 조성한 군중 심리까지. 베스트셀러의 필승공식. 이 ‘성공학’ 책의 대성공으로 잘 나가던 아나운서 한 명이 추락해버린 점은 아이러니다.

내용을 보자면, 어디 보자, 뭐, 별 내용 없지만서도 전개는 나름 흥미진진하다. 다른 성공학 책들이 선문답식의 헛소리인데 비해, 이 책은 꽤 구체적이다. "부자되고 싶으면 당장 돈을 모으기 시작해라!"는 식. 대단한 성공의 비밀을 알려줄 것 같은 ‘긴장감’마저 감돈다. 독자의 수준을 초등학교 저학년에 맞춘 점이 살짝 기분 나쁘긴 하지만, 사실 ‘마시멜로’에 관한 한 애나 어른이나 크게 다를 건 없겠다.

그러니까, 내용은 뭐냐면, 할 얘기도 없지만서도, 짐작대로 마시멜로는 "쾌락"이다. "행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지금 당장은 더 노력을 한다면, 마시멜로가 점점 더 커진다는 말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오늘 준비하고 노력하자." 엄마 잔소리의 책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딱 맞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 아는 뻔한 교훈이라도 활자화하면 힘이 훨씬 강해진다는 사실, 이 책이 증거다. 돈도 되고.

마시멜로 이야기 - 4점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한국경제신문

2007년 8월 7일 화요일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경제학으로 세상을 읽는 법

경제학 지식은 이상하리만큼 휘발성이 강하다. 2005년 2월에 사서 이미 한 번 읽은 책인데, 새 책처럼 즐겁게 읽었다. 이해했던 내용이 분명한데, 새삼 “이런 게 있었네!”하고 여러 번 감탄했다. 바보 같지만, 아무튼 책은 다시 한 번 재미있게 읽었다.

불완전한 시장과 정치적 보완책

이 책의 바탕을 이루는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면,

  1. 모든 사람이 늘 합리적 판단과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2. 시장 경제는 현존 최고의 시스템이지만, 중대한 문제점과 수많은 예외를 내포한다.
  3. 시장 경제는 효율을 추구하지만, 인간에겐 효율보다 인간다움이 훨씬 중요하다.

정도가 되겠다.

이 책은 "시장의 실패와 그 극복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인간적인 시장’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려면 '인간적인 정치'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이 책엔 보통 경제학 교양서에 비해 정치적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현실에서 경제와 정치는 따로 떼어내기 어렵고, 저자 스스로가 정치적인 사람이니까, 당연한 구성이다. 생각해보면, 아담 스미스가 가르치던 과목도 '정치경제학'이 아니었던가.

생각을 자극하는 즐거운 교양서

책 앞부분에서 기초적인 경제학 이론을 설명하긴 하지만, 이 책을 제대로 즐기려면 기본적인 시장의 원리와 한국의 현실 정치에 대한 이해가 있는 편이 좋다. 경제학 개론서 정도를 읽은 독자라면 큰 어려움은 없을 듯. 바보병 환자인 나도 재미있게 읽었으니까, 어려운 책은 아니다. 내용의 난이도를 교양서 수준에 걸맞게 적절히 조절했고, 설명도 무척 친절하다.

다만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고 할까? 논리적이고 좋은 문장이지만, 조금 긴 호흡이 제법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만큼 읽고 나면 지적 수준이 약간 올라간 듯한 뿌듯함이 있다. 역시 교양서는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맛이 있어야, 읽을 맛이 난다. 후후후.

경제학으로 세상을 읽는 법

정치적 현상과 사건을 경제학을 통해 해석하는 건 과연 경제학을 전공한 시사평론가 출신답다. 한번쯤 들어본 ‘요즘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다. 순수한 경제학 책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초판이 나오고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이야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으로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는데 좋은 교재임이 분명하다.

정치적인 내용이 많지만, 저자의 정치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큰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비교적 중도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며, 경제학 책이라는 본분을 잃지 않는다. 유시민 개인을 싫어하거나 보수 성향의 독자라도 크게 거부감이 들 만한 내용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그쪽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지만, 표지에 박힌 똘똘한 저자의 얼굴 때문에 절대로 안 읽을 듯. ^^

토론 진행자의 속풀이

이 책의 초판 발행일은 MBC의 <100분 토론> 사회자를 그만 둔 직후인 2002년 1월 28일. 저자는 집필기간이 1년 이상이라고 밝혔는데, 그러면 한참 <100분 토론>을 진행하던 시기에 쓴 책이라는 말씀. 목차만 봐도 당시 이슈들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진행자로서 토론을 지켜보며 꾹꾹 참았던 자기 의견을 이 책에 쏟아 부었다고 보면 맞지 않을까? 그 토론 좋아하는 양반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아마 이 책은 토론 진행자의 속병 치료용 저술이었는 지도.

정치인의 정책설명서

검색해보니, 저자가 정치 참여를 공식화한 개혁당 창당은 2002년 11월이었다. 그리고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요즘 새 책 <대한민국 개조론>이 출간됐다. 오호, 그렇다면, 이 책은 개혁당을 창당하는 저자의 출사표 혹은 정책 설명서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앞으로 이렇게 정치를 할 생각이니, 알아주십시오"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든 안하든, 이만큼 생각과 지식의 밀도가 높은 책을 쓸 능력을 갖춘 사람이 정치인이라는 건 국민들에 불행한 일이 절대로 아니다. 모든 정치인이 본인의 사상과 정치적 비전을 설명하는, 책다운 책을 써준다면 – 남의 손 말고 자기 손과 머리로 – 투표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될 텐데. 이미지만 팔아먹는 자서전 류가 넘쳐나는 꼴을 보고 있자면, 대의정치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얘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8점
유시민 지음/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