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7일 일요일

오픈오피스가 좋다

다음 책은 오픈오피스로 작업할 생각이다. 시험 삼아 일주일 정도 써봤는데, 꽤 마음에 든다.

출판사엔 원고를 doc나 txt 파일로 바꿔서 보내면 되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 다만, 원고지 매수 계산 기능이 없는 점이 살짝 아쉽다. 편집용지 자체를 원고지로 바꿔서 세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한/글처럼 자세한 문서 정보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맞춤법 검사 기능은 오히려 한/글보다 낫다. 나라인포테크라는 업체에서 상용 맞춤법 검사기를 윈도판 오픈오피스 한정으로 무료 공개했기 때문이다. 플러그인이 아니라, 패치를 덮어씌우는 방식이라서 OSX나 리눅스에서 사용할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오픈소스로 개발 중인 플러그인식 맞춤법 검사기도 있다. 아직까진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꾸준히 발전하면 앞으로 오픈오피스 보급에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기본 서식 설정이 한/글과 다르기 때문에, 작업량이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 그거야 비슷하게 고치면 그만이다. 내 설정은 다음과 같다.

  • 옵션에서 기본 글꼴을 '바탕 - 10'으로,
  • '표준' 서식을 줄 간격 '130%', 문단 '양쪽 맞춤'으로,
  • 페이지 스타일에서 페이지 여백을 '좌 3cm/우 3cm/상 3cm/하 2.5cm'로

맞추면 한쪽 당 40~41줄로 한/글 기본 설정과 비슷한 분량이 된다.

아직 적응기간이긴 하지만 별 문제가 없으면 계속 사용해보련다. Open your mind. OpenOffice.

참고 링크

2009년 9월 25일 금요일

뜻밖의 1Q84

1Q84

어제 처제가 다녀갔는데, 뜻밖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옹의 신작 <1Q84>를 맡겨놓고 갔다. 여행길에 읽으려고 샀는데 너무 무겁다며 나보고 먼저 읽으라면서. 처가 덕이란 바로 이런 것.

2009년 9월 24일 목요일

교하도서관 인문학 강좌 - 안티고네

내가 사는 파주 교하의 자랑거리라면, 단연 교하도서관이다.

이제 막 개관 1주년을 넘긴 어린 도서관이니, 시설은 물론 최신식이고, 사서들도 무척 친절하며,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장서량을 늘리는 데도 열심인데다가, 각종 문화행사 주최에도 적극적이다.

전국 각지에서 견학도 오는 ‘우리 동네’ 도서관을 자랑하려면 한도 끝도 없는데, 아무튼 이 훌륭한 도서관에서 오늘(2009년 9월 24일)부터 10월 29일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인문학 대중강좌를 연다는 말씀. 강사님들은 모두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연구원들인데, 오, 동네 도서관에서 이런 시도를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소식을 듣고 며칠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 첫 강좌인 '안티고네 – 국가의 법을 뛰어넘는 위반의 상상력'을 듣고 왔는데, 기대보다도 좋았다. 대중강좌이니만큼, 깊게 들어가진 않지만, 적어도 일반인들에게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나만 해도 집에 오자마자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의 번역본을 주문했으니까.

내가 이해한 강좌의 핵심은 "'신의 법'과 '국가의 법'의 충돌에 관한 문제제기"다. 개인, 가족, 관습법, 자연, 인륜 등을 상징하는 안티고네와 국가, 공동체, 성문법, 문명, 사회, 정치 등을 상징하는 크레온, 두 사람의 충돌을 통해 법의 의미를 고민해보자는 게 강좌의 의도인 듯싶다. 문제제기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거기서 딱 그친 점은 아쉽다. 대중강좌이고 시간도 짧았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강사님은 이화여대 탈경계 인문과학원의 김애령 선생님인데, 여성학을 주로 연구하시는 분이다. 중간에 버지니아 울프의 안티고네 해석을 다루며, '3기니'라는 수필 작품을 언급하셨는데, 굉장히 재밌다고 추천하셨으니, 안 읽어볼 수가 있나. ;-)

다음 강좌는 10월 8일, 주제는 개념미술이다. 놓치면 후회한다.

* 덧붙임 - 찾아보니, 교하도서관 블로그가 있는데, 강좌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올라와 있다.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슬픈 피자가게

우리 식구들 가장 즐겨 먹는 패스트푸드라면 단연 6,900원짜리 고구마 피자다. 값싸고, 빨리 나오고, 꽤 먹을 만할뿐더러, 우리 집 입 수에 딱 맞는 2.5인분이어서 참 좋다. 이곳에 이사 오고부터 한 달에 두세 판씩은 꼬박꼬박 먹은 듯싶다. 마침 피자집이 매일 지나는 길목에 있다 보니, 집에 들어오는 길에 아내의 긴급 지령이 떨어져도 문제없다. 유일한 불만이라면, 점심때나 주말에는 워낙 바빠서 3,4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피자집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저녁 7시 즈음 가게 앞을 지나치다가 슬쩍 들여다보면, 아저씨가 넋을 놓고 TV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즈음이면 늘 오븐 앞에서 땀 흘리는 모습만 보다가,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TV 화면을 응시하는 얼굴을 보니 낯설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피자를 주문할 때, – 보통 전화로 미리 주문해놓고 얼마 뒤 직접 찾으러 간다 – 10분 뒤 찾으러 오라는 대답도 심상치 않았다. 피자를 굽는 시간이 20분 이하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피자를 찾으러 가보니, 과연 우리 피자를 끝으로 오븐은 비어 있었다.

대박은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장사가 잘되던 집이 불과 십수 일 만에 파리가 날리게 된 건, 30미터 앞에 새로 생긴 5,900원짜리 피자집 때문이었다. 오늘 그 새로운 피자가게 앞으로 지나며 보니, 과연 손님이 제법 많았다. 딱 얼마 전 6,900원 피자집의 모습이었다.

내가 남의 처지를 걱정할 만한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자연스레 6,900원 피자집의 앞날이 걱정스러워졌다. 주인아저씨는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사람으로 보인다. (쭈뼛거리는 손님 접대 태도를 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꽤 목이 좋은 지금의 위치에 피자 체인점을 차리는 데는 아마도 아저씨의 퇴직금 전부와 얼마의 빚이 들었겠지. 지금까지의 호시절 동안 투자금을 얼마나 회수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 오래된 가게가 아니니까 잘해야 체인 본사에 상납한 돈 정도 뽑았을 듯싶다. 모르긴 몰라도, 권리금을 다 받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지금 상황에, 6,900원 피자집은 절대로 망해선 안된다.

값싼 별미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은 오늘 또 6,900원짜리 고구마 피자를 사 먹었다. 피자 토핑이 전보다 살짝 풍성해진 사실을 아내가 용케 알아차렸다. 주인아저씨도 멍청히 당하기만 할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아들은 겨우 한 조각을 먹고는 배부르다며 방으로 내뺐다. 내 입에도 어딘가 전보다 못한 듯싶었다. 아저씨의 대응책은 일단 우리 집에선 실패다.

이제 6,900원 피자집 주인아저씨는 어떻게 할 생각일까.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몇 달 버티지 못한다.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딱 하나, 이쪽도 5,900원 짜리 피자를 만드는 방법뿐이다. 수입은 대폭 감소하겠지만 당장 망하는 사태는 모면할 수 있겠지. 그러나 둘 중 하나가 망해 없어질 때까지 삶의 질의 하락은 불가피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장사 경험이 거의 없는 아저씨는 다른 수를 떠올리지 못할 공산이 크다. 불행히도 내 예상이 들어맞는다면 아저씨의 가족은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그게 한국이라는 게임판의 규칙이다. 피자에 대한 수요는 변함없고, 공급만 늘었으니, 가격이 내려가는 게 시장의 원리. 덕분에 우리 동네 사람들은 천 원 더 싼 피자를 먹을 수 있게 됐고, 한 가정은, 혹은 두 가정은 붕괴의 위기에 처했다.

딱히 시장의 원리를 탓하는 건 아니다. 그도 이로운 면이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냉정한 손이 벼랑 끝에 선 선량한 사람들의 등을 툭툭 밀어대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 거참 말은 좋다. 근데 왜 그 효율의 칼날에 베이는 건 늘 우리여야만 하는데? 진짜 자본가들, 재벌의 시장은 죄다 독과점 상태여서 초과이윤을 잘도 쪽쪽 뽑아먹는데, 노동자와 소자본가들은 살벌한 완전경쟁 시장에서 제 살 깍아먹기를 계속해야만 한다. 정말 엄청나게 가진 자들에겐 시장의 원리는커녕 법의 손길조차 무력하다. 우리가 한 번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지만, 정말 힘센 자들은 얼마든지 부도덕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도, 정부가 나서서 쉬쉬하며 도와준다. 민주주의 사회의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말이다.

왜 우리는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우리는 많고 저들은 적을뿐더러, 우리에겐 투표권이라는 썩 괜찮은 무기가 있는데도, 왜 우리는 이런 손해만 보는 게임을 계속하는 걸까. 소수가 (대개 시장 외 수단으로) 자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남은 부스러기를 놓고 힘없는 다수가 살아보겠다고 피 튀기게 상쟁하는 이 비극적 상황은 언제쯤 끝이 날까. 솔직히 방법은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유령은 왜 늘 떠돌기만 할까.

6,900원 피자집 주인아저씨는 그의 진짜 적이 5,900원 피자집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실까. 아마 모를 거다. 애독하시는 조선일보는 그런 건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