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일 토요일

Undercover Economist - 쉽게 읽는 경제학 콘서트

<경제학 콘서트>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책인데, 얼마 전 번역서를 읽다가 실망스러운 번역 때문에 읽다 말았다. 책의 내용은 좋은 듯싶어, 원서를 사서 다시 읽었다. 역시 괜찮은 책인데, 우리말 번역이 책을 망쳐도 너무 망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YES24의 <2006 네티즌 선정 도서>가 된 것을 보면, '네티즌' 독자들의 독해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은 꽤 읽을 만한 경제학 교양서인데, 내가 좋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커피, 교통체증, 주식시장, 세계화 등 친근하고 일상적인 소재로 독자의 흥미를 돋우고,
  2. 쉽고 위트 넘치는 저자의 설명과 문장력이 돋보이며,
  3. 경제학 문외한을 위한 기본적인 개념을 두로 다뤘다.

경제학 공부할 겸, 영어 공부할 겸

뒤로 갈수록 조금씩 지루하지만, 꽤 재미있는 경제학 교양서다. 어렵지 않아서 좋다. 경제학 개론서에서 한 문단이면 설명할 내용을 상세한 실례를 들어가며 한 장(chapter)에 걸쳐 설명하니, 교양 경제학 개론 빵구난 대학생들에겐 구원과도 같은 필독서다. 고등학생 정도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니, 더 이상 “경제학은 어려운 거야”라는 변명은 끝.

다만 우리말 번역본 <경제학 콘서트>의 번역이 수준 이하라는 점이 아쉽다. 대학 신입생 정도라면 원서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일단 영어가 쉽다. 260쪽이 안 되는 분량(영국 발행본 기준)이고, 단어도 평이한 수준이다. 그야말로 일반인 독자 대상의 책이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한테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해리포터를 원서로 읽는 수준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버겁더라도 시간을 들여서 이 책 한 권을 뗀다면, 영어 실력도 경제학 지식도 껑충 성장할 것 같다.

자, 그러면, 이제 욕을 시작해볼까?

뻔하디 뻔한

내용이 평이해도 너무 평이하다. 지나치게 교과서적이라고 할까.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경제학 교양서를 열심히 읽는 당신이라면 뻔하고 다 아는 얘기를 되풀이한다. 희소성, 차액지대, 비교우위, 시장의 실패, 정보 불균형, 게임 이론, 인센티브 등등. 단어만 나열하면 어려운 소리 같지만, 요즘 나오는 어느 경제학 책을 펼쳐도 다 나오는 얘기다. 그나마 다른 경제학 교양서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처음에 나오는 ‘커피 전문점의 비밀’ 정도다. 그리고 '너무나 교과서적이라는 점'도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아마 그래서 더 많이 팔렸겠지만.

한국이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수혜자?

또 한 가지.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저자는 시장 경제와 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자로 우리나라, 남한을 꼽았다. 그 반대인 계획 경제로 인한 낙오자 대표로는 북조선을 꼽았고. 저자의 주장은 남한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은 시장 경제를 도입했고, 세계 시장과 교역하며, 다국적 자본에게 시장을 개방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시장 경제를 통해 성장했다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아다시피, 우리의 경제적 성장은 주로 ‘개발 독재’라고 불리는 박정희 정권 때 이뤄졌다. 이때 우리의 유한한 자원이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의 원리'에 따라 배분-사용되었던가? 아니다. '권력자의 계획'에 따라 정부가 직접 배분했다. 독일에 온 국민이 아부해가며 얻어온 차관과 일제에 의해 우리 민족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금 등이 어떻게 쓰였던가? 몽땅 산업 인프라와 재벌에게 밀어줬다.

즉, 우리의 경제 성장은 독재 권력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 '계획 경제' 아래 이뤄졌다. 국민의 직접적인 경제적 희생이 그 발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1997년의 '그 일'은 계획 경제의 부작용으로 해석할 수도..) 물론 미시적인 면의 시장경제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흔히 말하는 ‘한강의 기적’은 계획 경제 덕분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우리는 ‘국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성장을 일궜고, 이는 소련이나 중공이나 북조선의 체제와 거시적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에겐 미국이라는 통 큰 구매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요즘의 세계화’와는 별 무관계한 이야기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특수하다

우리의 경제성장은 ‘예외’적인 부분이 많은데, 서양의 일부 경제학 서적들은 마치 당연한 경제 발전의 수순인 양 묘사한다. 식민지 출신 국가 가운데 우리와 같은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우리 말곤 없다. 꼭 우리가 잘났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정말 예외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에 큰일을 이뤄냈다. 우리의 발전 속도를 다른 후진국들에게 적용하는 건, 그야말로 서구 제국주의의 시각이다. “한국을 봐라. 성공했지 않냐? 너희가 가난한 건 못났기 때문이지,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건 정말 가진 자의 논리다.

그리고 저자는 다국적 기업들의 후진국 현지 공장의 비인도적인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섣불리 그 이론 – 근로조건을 개선하면, 결국 그들의 일자리를 뺏는 셈이라는 – 을 비판하기엔 내가 아는 바가 너무 적지만, 한 가지는 도저히 대충 용납할 수가 없다.

‘한국의 경우, 경제가 성장하니까 저절로 근로조건이 좋아졌다’는 주장은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다. 우리의 평균 임금이 상승하면서, 다국적 기업의 공장 – 이른바 sweatshop – 이 철수한 건 사실이지만, 근로조건의 개선은 이와는 별개로 봐야 한다. 내가 아는 한, 노동조건의 개선은 노동운동과 민주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저자는 경제가 성장하면 모두 해결된다는 식이다. 이건 '시장 경제는 완벽한 경제체제다'라는 주장과 다름없는 헛소리다.

또, 저자의 주장이 옳다면, 80년대의 노동운동은 다 헛고생이라는 말인데, 땀 흘려 일하는 한국인 가운데 이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제법 잘 살게 된 지금도 정규 근무시간을 훨씬 초과해서 일하기를 강요받는 사람들이 아주 아주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노동조건은 아직도 열악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희소성의 힘’. 그 힘이 기업에게 있는 한 노동자는 시장 밖의 무엇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은 '희소성의 힘'을 소유한 자에게만 유효하다.

아무튼 식민주의와 후진국 노동력 착취의 정당화에 한국의 사례가 이용되는 것은 정말 불쾌하다. … 휴,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리하면, ‘좋은 책이지만 다른 관점의 책도 많이 읽어보세요’가 나의 결론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