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나는 비와 함께 간다 단평

나의 감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장황한 이야기와 강박적 악취미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

I come with the rain

근 몇 달 간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그나마 가장 낫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진 않지만, 그 덕분에 이도 저도 아닌 독특한 뒷맛이 흥미롭다. 게다가 이만큼 진지하고 대담하게 말을 걸어오는 작품을 외면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조연 배우들의 국적만큼이나 다채로운 이미지와 생각이 묘한 조합을 이루는 것 역시 약간 불편하면서도 재미있다.

그렇지만 흥행은 어려울 게 틀림없다. 월요일 오후 10시에 보긴 했지만, 관객은 나를 포함해 넷뿐이었고, 심지어 내 근처에 앉았던 커플은 중간에 나가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웹에 올라온 감상을 대충 둘러봤는데, 저주에 가까운 평까지 심심치 않게 보여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 같은 취향은 점점 더 소수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나 싫어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편집이 불친절하고 배경음악이 악취미적인 게 사실이며 전체적인 짜임새도 '웰메이드'와는 거리가 한참 멀긴 하지만, 고통과 구원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건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신약의 재해석으로 불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누아르-스릴러와 결합해서, 말초적 자극과 종교적 성찰 사이를 오가는 재밌는 작품이 됐다.

누군가는 '배우들이 영화를 살렸다.'라고 평했지만, 사실 배우들의 연기가 특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배우들의 밋밋한 연기를 주제가 살리는 인상이다. '고통과 구원'이 주제라면, 다들 조금 더 절박함을 표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클라인(조쉬 하트넷)이 느끼는 혼란과 고통은 가슴에 와 닿지 않고, '능력자'치곤 카리스마가 부족한 키무라 타쿠야는 미스캐스팅이란 생각마저 든다. 이병헌이 연기한 수동포라는 인물은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그 모호함과 뵨 사마의 안정된 연기 덕분에 상당히 매력적이다. 연쇄살인마 하스포드도 전형적이긴 하나 나름 매력적인 인물인데, 여주인공 릴리는... 감독 사모님이 여주인공을 맡는 건 좀 참아주셨으면.

그리고 라디오헤드는, 나도 팬이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작작 좀 우려드시길. 이 정도면 BGM 테러다.

2009년 10월 21일 수요일

씨네21에 실린 '39계단' 소개글

39계단

씨네21에 '39계단'을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
훌훌 페이지를 넘기다가, 눈에 익은 표지가 나와서, 깜짝!!
부디 많이 팔려서 후속작도 나올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링크 - 씨네21 [도서]쫓기는 자의 심장박동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한글과컴퓨터 오피스 2007 홈에디션

오픈오피스를 주로 쓰고는 있지만, 4만 원 - 정확히는 39,600원 - 이라는 비교적 싼 가격과 한컴 오피스 2010 무료 업그레이드의 유혹은 강력하다. 한/글을 쓰시는 분이라면 지금이 구입 적기. 11번가에서 쿠폰, OK캐시백, 포인트를 총동원해서 35,990원(배송비 무료)에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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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9일 금요일

교하도서관 인문학 강좌 - 개념미술

지난 9월 24일 '안티고네'에 이어, 두 번째 인문학 강좌였다. 주제는 '개념미술'.
이야기로 풀었던 지난 강좌보다는 조금 딱딱하지만, 역시 재미있고 유익했다. 전위적 현대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기초 수준이나마 얻을 수 있어서 보람찬 시간이었다.

내가 이해한 개념미술은, 작품 자체보다 작품에 담긴 예술가의 생각을 우선하는 사조다.
기존의 미술 작품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게 보통이다.

개념 → 과정 (재료, 작업행위) → 작품 → 감상 → 미술시장 (화랑, 미술관을 통한 상품화)

그런데 개념미술은 이 가운데 '개념'이 미술의 본질에 가까우며, 나머지 과정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혹은 부차적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런 문제의식을 처음 제기한 이가 바로 프랑스의 예술가 마르셀 뒤샹. 개념미술의 시초라고 하면 뒤샹의 '레디메이드' 연작을 우선 꼽는데, 이는 흔한 기성상품을 가져다가 예술가의 개념을 적용시켜 예술작품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에는 과정(작품 구현)이 생략되고, 대신 개념이 선택을 거쳐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뒤샹은 과정만 생략했지만, 극단적인 개념미술가들은 문서과 도표 등으로 개념만 제시하고 작품은 아예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정도면, 미술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거죠! ^^

과정미술(process art) 역시 개념미술의 범주에 넣는데, 이는 작품이 아닌 '작업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또는 작업 과정이 곧 작품이다.) 이게 참 재미있는데, 행위예술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행위예술과 달리 유무형의 작품을 가정한다. 그러나 막상 그 결과물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 밖에도 대지미술(land art), 개념적 오브제, 사진을 이용한 개념미술 등을 소주제로 다뤘다.

결국 개념미술은 '미술에 관한 미술'로 정의 내릴 수 있다. 미술적 개념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비전통적인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미술의 정의 자체를 시험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기존 미술작품과 미술품 '시장'에 대한 도전과 조롱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장난 같은 현대미술작품을 보고, ‘이게 미술작품이야?’라는 의문이 들었다면 제대로 본 거라는 말씀. 그리고 진지한 감상자라면, 거기서 그치지 말고, 작품의 미술적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 진정한 작품 감성이 시작된다. 개념미술은 감상자를 자극하고 질문을 던지는, 도발적이고도 지적인 미술이다.

다음은 강의 중에 재미있게 본 작품들(을 올릴 생각이었으나 귀찮은 나머지 나중에 올릴 생각)이다.

2009년 9월 27일 일요일

오픈오피스가 좋다

다음 책은 오픈오피스로 작업할 생각이다. 시험 삼아 일주일 정도 써봤는데, 꽤 마음에 든다.

출판사엔 원고를 doc나 txt 파일로 바꿔서 보내면 되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 다만, 원고지 매수 계산 기능이 없는 점이 살짝 아쉽다. 편집용지 자체를 원고지로 바꿔서 세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한/글처럼 자세한 문서 정보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맞춤법 검사 기능은 오히려 한/글보다 낫다. 나라인포테크라는 업체에서 상용 맞춤법 검사기를 윈도판 오픈오피스 한정으로 무료 공개했기 때문이다. 플러그인이 아니라, 패치를 덮어씌우는 방식이라서 OSX나 리눅스에서 사용할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오픈소스로 개발 중인 플러그인식 맞춤법 검사기도 있다. 아직까진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꾸준히 발전하면 앞으로 오픈오피스 보급에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기본 서식 설정이 한/글과 다르기 때문에, 작업량이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 그거야 비슷하게 고치면 그만이다. 내 설정은 다음과 같다.

  • 옵션에서 기본 글꼴을 '바탕 - 10'으로,
  • '표준' 서식을 줄 간격 '130%', 문단 '양쪽 맞춤'으로,
  • 페이지 스타일에서 페이지 여백을 '좌 3cm/우 3cm/상 3cm/하 2.5cm'로

맞추면 한쪽 당 40~41줄로 한/글 기본 설정과 비슷한 분량이 된다.

아직 적응기간이긴 하지만 별 문제가 없으면 계속 사용해보련다. Open your mind. OpenOffice.

참고 링크

2009년 9월 25일 금요일

뜻밖의 1Q84

1Q84

어제 처제가 다녀갔는데, 뜻밖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옹의 신작 <1Q84>를 맡겨놓고 갔다. 여행길에 읽으려고 샀는데 너무 무겁다며 나보고 먼저 읽으라면서. 처가 덕이란 바로 이런 것.

2009년 9월 24일 목요일

교하도서관 인문학 강좌 - 안티고네

내가 사는 파주 교하의 자랑거리라면, 단연 교하도서관이다.

이제 막 개관 1주년을 넘긴 어린 도서관이니, 시설은 물론 최신식이고, 사서들도 무척 친절하며,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장서량을 늘리는 데도 열심인데다가, 각종 문화행사 주최에도 적극적이다.

전국 각지에서 견학도 오는 ‘우리 동네’ 도서관을 자랑하려면 한도 끝도 없는데, 아무튼 이 훌륭한 도서관에서 오늘(2009년 9월 24일)부터 10월 29일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인문학 대중강좌를 연다는 말씀. 강사님들은 모두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연구원들인데, 오, 동네 도서관에서 이런 시도를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소식을 듣고 며칠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 첫 강좌인 '안티고네 – 국가의 법을 뛰어넘는 위반의 상상력'을 듣고 왔는데, 기대보다도 좋았다. 대중강좌이니만큼, 깊게 들어가진 않지만, 적어도 일반인들에게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나만 해도 집에 오자마자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의 번역본을 주문했으니까.

내가 이해한 강좌의 핵심은 "'신의 법'과 '국가의 법'의 충돌에 관한 문제제기"다. 개인, 가족, 관습법, 자연, 인륜 등을 상징하는 안티고네와 국가, 공동체, 성문법, 문명, 사회, 정치 등을 상징하는 크레온, 두 사람의 충돌을 통해 법의 의미를 고민해보자는 게 강좌의 의도인 듯싶다. 문제제기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거기서 딱 그친 점은 아쉽다. 대중강좌이고 시간도 짧았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강사님은 이화여대 탈경계 인문과학원의 김애령 선생님인데, 여성학을 주로 연구하시는 분이다. 중간에 버지니아 울프의 안티고네 해석을 다루며, '3기니'라는 수필 작품을 언급하셨는데, 굉장히 재밌다고 추천하셨으니, 안 읽어볼 수가 있나. ;-)

다음 강좌는 10월 8일, 주제는 개념미술이다. 놓치면 후회한다.

* 덧붙임 - 찾아보니, 교하도서관 블로그가 있는데, 강좌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올라와 있다.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슬픈 피자가게

우리 식구들 가장 즐겨 먹는 패스트푸드라면 단연 6,900원짜리 고구마 피자다. 값싸고, 빨리 나오고, 꽤 먹을 만할뿐더러, 우리 집 입 수에 딱 맞는 2.5인분이어서 참 좋다. 이곳에 이사 오고부터 한 달에 두세 판씩은 꼬박꼬박 먹은 듯싶다. 마침 피자집이 매일 지나는 길목에 있다 보니, 집에 들어오는 길에 아내의 긴급 지령이 떨어져도 문제없다. 유일한 불만이라면, 점심때나 주말에는 워낙 바빠서 3,4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피자집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저녁 7시 즈음 가게 앞을 지나치다가 슬쩍 들여다보면, 아저씨가 넋을 놓고 TV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즈음이면 늘 오븐 앞에서 땀 흘리는 모습만 보다가,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TV 화면을 응시하는 얼굴을 보니 낯설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피자를 주문할 때, – 보통 전화로 미리 주문해놓고 얼마 뒤 직접 찾으러 간다 – 10분 뒤 찾으러 오라는 대답도 심상치 않았다. 피자를 굽는 시간이 20분 이하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피자를 찾으러 가보니, 과연 우리 피자를 끝으로 오븐은 비어 있었다.

대박은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장사가 잘되던 집이 불과 십수 일 만에 파리가 날리게 된 건, 30미터 앞에 새로 생긴 5,900원짜리 피자집 때문이었다. 오늘 그 새로운 피자가게 앞으로 지나며 보니, 과연 손님이 제법 많았다. 딱 얼마 전 6,900원 피자집의 모습이었다.

내가 남의 처지를 걱정할 만한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자연스레 6,900원 피자집의 앞날이 걱정스러워졌다. 주인아저씨는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사람으로 보인다. (쭈뼛거리는 손님 접대 태도를 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꽤 목이 좋은 지금의 위치에 피자 체인점을 차리는 데는 아마도 아저씨의 퇴직금 전부와 얼마의 빚이 들었겠지. 지금까지의 호시절 동안 투자금을 얼마나 회수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 오래된 가게가 아니니까 잘해야 체인 본사에 상납한 돈 정도 뽑았을 듯싶다. 모르긴 몰라도, 권리금을 다 받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지금 상황에, 6,900원 피자집은 절대로 망해선 안된다.

값싼 별미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은 오늘 또 6,900원짜리 고구마 피자를 사 먹었다. 피자 토핑이 전보다 살짝 풍성해진 사실을 아내가 용케 알아차렸다. 주인아저씨도 멍청히 당하기만 할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아들은 겨우 한 조각을 먹고는 배부르다며 방으로 내뺐다. 내 입에도 어딘가 전보다 못한 듯싶었다. 아저씨의 대응책은 일단 우리 집에선 실패다.

이제 6,900원 피자집 주인아저씨는 어떻게 할 생각일까.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몇 달 버티지 못한다.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딱 하나, 이쪽도 5,900원 짜리 피자를 만드는 방법뿐이다. 수입은 대폭 감소하겠지만 당장 망하는 사태는 모면할 수 있겠지. 그러나 둘 중 하나가 망해 없어질 때까지 삶의 질의 하락은 불가피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장사 경험이 거의 없는 아저씨는 다른 수를 떠올리지 못할 공산이 크다. 불행히도 내 예상이 들어맞는다면 아저씨의 가족은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그게 한국이라는 게임판의 규칙이다. 피자에 대한 수요는 변함없고, 공급만 늘었으니, 가격이 내려가는 게 시장의 원리. 덕분에 우리 동네 사람들은 천 원 더 싼 피자를 먹을 수 있게 됐고, 한 가정은, 혹은 두 가정은 붕괴의 위기에 처했다.

딱히 시장의 원리를 탓하는 건 아니다. 그도 이로운 면이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냉정한 손이 벼랑 끝에 선 선량한 사람들의 등을 툭툭 밀어대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 거참 말은 좋다. 근데 왜 그 효율의 칼날에 베이는 건 늘 우리여야만 하는데? 진짜 자본가들, 재벌의 시장은 죄다 독과점 상태여서 초과이윤을 잘도 쪽쪽 뽑아먹는데, 노동자와 소자본가들은 살벌한 완전경쟁 시장에서 제 살 깍아먹기를 계속해야만 한다. 정말 엄청나게 가진 자들에겐 시장의 원리는커녕 법의 손길조차 무력하다. 우리가 한 번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지만, 정말 힘센 자들은 얼마든지 부도덕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도, 정부가 나서서 쉬쉬하며 도와준다. 민주주의 사회의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말이다.

왜 우리는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우리는 많고 저들은 적을뿐더러, 우리에겐 투표권이라는 썩 괜찮은 무기가 있는데도, 왜 우리는 이런 손해만 보는 게임을 계속하는 걸까. 소수가 (대개 시장 외 수단으로) 자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남은 부스러기를 놓고 힘없는 다수가 살아보겠다고 피 튀기게 상쟁하는 이 비극적 상황은 언제쯤 끝이 날까. 솔직히 방법은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유령은 왜 늘 떠돌기만 할까.

6,900원 피자집 주인아저씨는 그의 진짜 적이 5,900원 피자집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실까. 아마 모를 거다. 애독하시는 조선일보는 그런 건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을 테니까.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

조금 더 나은 사진을 위한 조언 모음집이다. 한겨레 곽윤섭 사진기자와 김경신 화가의 책인데, 명색은 사진책이지만,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처음에는 시시한 책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책 두께나 가격에 비해, 내용이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새로 깨달은 바가 많다. 어딘가 다른 책에서도 찾을 수 있는 조언이겠지만, 귀여운 그림과 간결한 글로 제시한 덕분에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영감을 자극한다.

나처럼 사진 찍기는 좋아하지만 잘 찍는 법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매력 있는 책이다. 이제 막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친구에게 선물하면 딱 좋을 듯. 가볍게 읽고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예쁜 책이다.

101가지 조언 가운데 가장 뜨끔한 건,

표준렌즈만으로 충분하다.

장비병 환우 여러분께 꼭 일독을 권한다. ^^

* 링크 - 곽윤섭의 사진마을

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 - 6점
곽윤섭 지음, 김경신 그림/동녘

도시 탐험가 김미루

최근 서울비 님 블로그를 통해, 김미루(Miru Kim)라는 사진작가를 알게 됐는데, 마침 8월 25일부터 9월 15일까지 '갤러리 현대 강남'에서 개인전을 갖는다고 한다. 파주에서 강남은 멀고도 먼 곳이지만, 시간을 내서 가볼 생각이다.

김미루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1981년 생 젊은 여성 작가인데, 대도시의 버려진 시설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Naked City Spleen'이라는 프로젝트로 주목 받고 있다.
(작품은 저자의 웹사이트에서 감상할 수 있다.)

도시의 폐허 속에서 자기 누드를 찍은 사진들인데, 그 낯설고 섬뜩하고 위험한 공간 속 누드는 굉장히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보고 있자면 스멀스멀 불안이 밀려든다고 할까. 나쁜 느낌은 아니고, 버려진 건축물의 기하학적 구성과 누드의 조합이 영 불편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아무튼 무척 강렬한 인상이 남는 작품들이다. 벽에 걸어놓고 매일 보고 싶진 않지만, 사진집을 사 놓고 생각날 때마다 음미하고픈 싶은 작품들.

그녀의 별명은 도시 탐험가(urban explorer). 혼자서 사진기 한 대 들고, 인적 없는 도시의 속살을 헤집고 다니는 예술가의 열정이 존경스럽다. 특히, 폐쇄된 아동병원 부검실의 부검대 위에서 찍은 사진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다. 그 곳 말고도 어디든 뭐라도 나올 것만 같은 곳만 돌아다니는데, 뭐랄까, 장하다고 할까. 무섭다고 할까.

그런데 작품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그 얼마나 새색시 같은지 모른다. 역시 여자는 신비.

* 덧붙임 (090824) - 오늘 알았는데, 도올 김용옥 선생의 따님이라고...!!

링크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블로그를 옮기고

블로그를 옮겼다.
텍스트큐브닷컴이 아직 오픈베타가 아닐 때 님에게서 받은 계정인데, 오늘 도메인을 연결했다. (누님, 감사해요!)

굳이 이사의 귀찮음을 감수한 까닭은, 우선 워드프레스의 버그(?) 때문인지 내 웹호스팅 서버에 종종 과부하가 걸리곤 했고, 같은 문제인지는 몰라도 로딩 속도도 너무 느려진 데다가, 마침 웹호스팅 계정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옮기고 나니, 이곳도 마땅치 않은 구석이 눈에 띈다.
우선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처음 텍스트큐브를 버리고 워드프레스로 옮긴 이유가 바로 이 망할 텍스트 편집기 때문이었는데, 역시나 전혀 발전이 없다. 직접 HTML 태그를 입력하는 수밖에 없겠다. 워드프레스 편집기의 그 깔끔하고 우아한 HTML 코드가 그립니다.

그리고 아무리 가입형 블로그라지만, 너무 폐쇄적이다. 플러그인은 사용할 수도 없고, 스킨을 편집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 그래도 구글이니까 앞으로 개선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는 있는데, 지금으로선 티스토리보다 나을 게 없다.

블로그 운영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는데, 우선 읽은 분들을 배려하기 보다는 '나를 위한 블로깅'을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어차피 방문객도 거의 없고, 와서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더군다나 적은데, 그냥 처음 생각대로 일기 정도로 여기고 편하게 끄적이고 마는 편이 좋을 듯싶다. 대신 조금은 꾸준하게. 일이 아주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책이나 영화를 보면 매번 짧은 메모라도 남길 생각이다.

메타블로그와는 인연을 끊기로 마음 먹었다. 서로 도움이 안 되는 관계니까.
알라딘 광고는 그대로 둘 생각인데, 한달 수익은 50원 정도지만, 그거라도 책 사는 데 보탬이 되니까. ^^

이제 책 읽는 키노의 '시즌 2'라고 생각하고 있다. 모토는 편하게, 단순하게, 내 맘대로.

2009년 6월 28일 일요일

영화 리뷰 쓰기 - 영화 블로깅의 101

이 책의 저자인 영화평론가 김봉석 씨의 정의에 따르면, 리뷰는 글을 통해 저자와 독자가 함께 영화를 다시(re) 보는(view) 경험이며, 감상문과 평론 중간 수준의 짧은 비평이자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가치 판단을 하려 할 때 쓰는 글"이다. 평론처럼 전문적일 필요는 없기에, 누가 쓰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 ‘어떻게’가 바로 이 책의 주제다.

149쪽에 불과한 적은 분량이고 활자도 크기 때문에, 1~2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짧고 실용적인 내용인지라 덧붙일 말이 많진 않은데, 영화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 소갯글을 남긴다.

체계적 이론이나 대단한 비결이 담긴 건 아니지만, 친절하고 무척 실용적인 책이다. (나를 비롯해) 읽을 만한 영화평을 쓰고자 하는 분들에겐 꽤 좋은 지침서가 될 만하다.

뒤표지에 요약된 저자의 팁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인상적인 대사, 장면에서 시작하라
  • 결말은 더욱 인상적으로, 시작과 끝이 좋으면 다 좋다
  • 짧은 글에서는 하나의 주제만 파고들어라
  • 내러티브를 분석하라. 단 내러티브 분석은 내용 설명이 아니다
  • 인상적인 대사나 장면을 구체적으로 인용하라
  • 영화사적 관점에서 분석하라 – 장르의 역사를 꿰뚫어라
  • 형식의 분석 – 형식은 테크닉이 아니다

등등.

리뷰 읽고 쓰는 건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즐기는 한 방법이다. 모든 관객이 리뷰어가 될 필요는 없지만, 영화 한 편 만드는 데 드는 재능과 노력과 시간과 자원을 생각하면, 좋은 영화를 딱 한 번 보고 마는 건 죄악 아닐까.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영화 리뷰 쓰기 - 6점
김봉석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2009년 6월 14일 일요일

김지운의 숏컷 - 영화광/영화감독의 일기

<감독, 열정을 말하다>를 읽고, 김지운 감독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의 글과 인터뷰를 읽다보면 호감을 넘어 묘한 동질감까지 느낀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보니, 늘 신뢰할 만한 영화감독이며 좋은 예술가인데, 한편으론 어딘지 소심하고 약간 찌질한 분위기가 풍기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미가 있다고 할까. 실제 사람됨이야 알 수 없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귀엽게 엉뚱한 천재?  ^^

작품마다 신선한 예술가적 감각이 돋보이지만, 때론 거리낌 없이 통속적인 점이 좋다. 딱히 정해진 스타일이 있다기보단 두루두루 능한 점도 독특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장르를 빌려오지만, 결과물은 늘 한국영화의 질을 한 단계 올려놓는 훌륭한 작품이다. 제도화된 영화수업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장인과 같은 능숙함을 자랑하고, 폭넓은 관객과 소통하면서도 적지 않은 마니아를 거느린 이상한 감독이다. 이런 감독의 작품을 자막 없이 볼 수 있단 건 분명 행운이다.

이 책 <김지운의 숏컷>은 <박찬욱의 몽타주>, <류승완의 본색>과 형제다. <본색>은 아직 못 봤지만, <몽타주>와는 매우 비슷하다. 데뷔기, 예술관, 작품 제작기, 추천 작품, 신변잡기 등으로 이뤄진 구성이 약간 산만하긴 하지만 영화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만하다. 감독의 팬에겐 두말할 나위 없이 최고일 테고.

<숏컷>과 <몽타주>를 비교하면, 솔직히 재미는 <몽타주>가 낫다. 일단 밀도가 조금 더 높고, 박찬욱 감독 특유의 의뭉스러움이 곳곳에 묻어나는 데다가, 좋은 영화평도 함께 실려 있으니까. 그에 반해, <숏컷>의 미덕이라면, 베테랑 영화광의 메모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영화광의 자세를 한수 배울 수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김 감독님이 추천하는 작품 목록은 나처럼 고립된 영화팬에겐 귀중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그 중 꼭 보고싶은 몇 편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 스즈키 세이준 – 지고이네르바이젠, 유메지, 육체의 문, 켄카 엘레지, 살인의 낙인
  • 와카마츠 코지 – 태아가 밀렵될 때
  • 미이케 타케시 – 오디션
  • 아녜스 바르다 – 행복
  • 존 카사베츠 – 얼굴들
  • 라디슬라스 스트레비치 – 마스코트
  • 대런 아로노프스키 – 레퀴엠, 파이
  • 크리스 스미스 – 아메리칸 무비
  • 페드로 알모도바르 – 그녀에게
  • 필 조아누 – U2, 래틀 앤드 험
  • 서극 – 순류역류
  • 찰스 로튼 – 사냥꾼의 밤
  • 브라이언 드 팔마 – 자매들
  • 두산 마카베예프 – 스위트 무비
  • 토드 솔론즈 – 해피니스

크게 의식하진 못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난 김지운 감독 작품을 다 좋아했다. 제일 좋은 건 <달콤한 인생>. 극장에서 두 번, 케이블로는 띄엄띄엄이지만 네다섯 번을 본 거 같다. 이 책에서 스스로 말했듯이 그의 영화는 서사보다 ‘인상’이 앞서는데, 그런 점이 내 취향과 맞는 부분이 있다.

<인생>은 씬마다 다 좋지만, 특히 선우(이병헌)가 소파에 누워 스탠드를 껐다 켰다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마무라 쇼헤이 옹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살짝 비슷한 장면이 나오기에 거기서 가져왔나 싶었데, 알고보니 김지운 감독님의 버릇이란다. 중년남에겐 너무 처량한...

김지운의 숏컷 - 6점
김지운 지음/마음산책

2009년 6월 9일 화요일

감독, 열정을 말하다 - 예술가는 입으로 말한다

인터뷰 기사를 참 좋아하는데, 당분간은 안 읽어도 되겠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역작 <감독, 열정을 말하다> 때문이다. 자그마치 440쪽 분량의 ‘마라톤 인터뷰집’을 사나흘 연속 읽다 보니, 내가 인터뷰한 것도 아닌데, ‘인터뷰 피로 증상’이 온다. 아, 완전 수다쟁이들. 봉준호 감독 편은 100쪽이 넘는데, 아아, 누가 말했던가,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그거 다 뻥이다.

2006년 나온 책이니까, 조금 옛날이야기이긴 한데, 영화팬이라면 귀가 솔깃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동료 감독들과 얽히고 설키는 영화판 뒷이야기와 영화 제작 과정, 감독이 본 배우, 영화평에 대한 평 등은 몇 번을 읽어도 재미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한미 FTA와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가 주관심사인데, 영화인들이 노무현 대통령에서 품었던 기대와 실망, 배신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슬쩍슬쩍 드러나는 감독들의 딜레마다. 정치적으론 좌파지만, 영화판에선 잉여가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최상위 계급이며, 약자인 스탭들의 노동력 착취를 방관 혹은 묵인하는 처지. 거대자본 없인 존재할 수 없는 운명. 황금알을 낳지 못하면 내일이라도 매장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직접 언급은 그리 눈에 띄지 않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릿속 한켠에 머문다.

그밖에 드문드문 영화판 내외 인물들에 대한 꽤나 직설적 발언 등은 영화잡지에서는 보기 힘든 내용이다.

긴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감독들의 모습은 내 상상과 꽤나 다른 뿐더러, 상당히 다면적이고 또 인간적이다. 인터뷰이의 사람다운 모습과 인터뷰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지면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을진대, 이 책의 인터뷰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직접 지켜보고 앉은 듯 생생하다. 솔직한 활자화라고 할까? 편집하는 입장에선 예쁘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유혹이 컸을 텐데, 이만큼 꾸밈없는 책을 낸 뚝심이 대단하다. 덕분에 독자에겐 무척 시원하고, 감독님들은 나중에 조금 후회했을지 모를 책이 되었다.

이름값 때문인지 김지운, 류승완, 변영주, 봉준호 편이 재미있었는데, 최고는 단연 봉준호 감독이다. 내 상상대로 과연 총명하고 재미있고 약간 변태인데, 그 정도가 모두 내 상상 이상이다. (우리 동네 아는 형이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설명하긴 좀 어렵지만, 봉 감독님 특유의 “헛헛”하는 웃음소리가 답변마다 배어있고, 이따금 박장대소할 만한 개그라인이 나온다. 다른 감독 편은 몰라도, 봉 감독 편만은 강추다!

이 책은 <영화, 감독을 말하다>라는 속편이 있다. 속편에는 지승호 씨가 오매불망 바라던 박찬욱 감독님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역시 재미있다. ^^

2009년 6월 3일 수요일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촌평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감독에 대한 호감 분포가 이상하리만큼 광범위한 이유가 궁금했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내로라하는 평론가와 감독들이 하나같이 ‘엄지 업!’을 하는 걸까.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을 본 까닭은 그렇다.

스포일러 없는 짧은 감상을 남겨본다.

재밌게 보긴 봤는데, 솔직히 영화적으로 –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 대단해 보이진 않는다. 툭툭 던지는 듯한 이야기 흐름과 낮고 정직한 시선이 좋긴 한데, 별 5개는 과한 평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클리셰에서 자유로운 점은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별 4개 이상을 주긴 힘들다. (솔직히 요즘 내가 좋아하는 류의 영화는 아니다. 요즘은 적당히 기교를 부리는 영화가 좋더라.)

영화관에서 보면, 감상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황량한 아일랜드의 언덕을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장면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하다. 큰 화면에, 소리 좋은 영화관에서 제대로 봤다면, 확실히 전체적 인상이 크게 달랐을 듯. 예를 들어, 데미안이 ‘배신자’들을 처형하는 장면은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는데,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와 거친 숨소리, 넓게 펼쳐진 스산한 황무지 언덕을 제대로 느꼈더라면 그 울림이 30배는 더 크지 않았을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 아닐까 싶다. 영화기술적으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아일랜드 독립이라는 간단치 않은 소재를 낮은 눈높이에서 섬세하게 그린 점이 좋은 평가의 이유인 듯싶다. ‘가해자’인 영국을 인정사정 까는 건 지나치게 일방적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어설프게 식민 지배의 이로움을 중얼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아니나 다를까 개봉 후 영국에서 역사적 사실 관계에 대한 말이 많았고, 로치 감독은 배신자 소리도 들었다.)

아일랜드 독립 투쟁과 독립 이후 분열은 당연히 우리의 독립 과정과 겹쳐 보인다. 어쩌면 그 때문에 오히려 이 영화에 대한 감흥이 덜 한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이야기니까.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 어이 없고 부끄러운 일이라면 누구 못지 않게 많이 겪은 게 바로 우리니까. 그렇지만 우리말이 게일어처럼 애국을 상징하는 ‘박제’가 되지 않은 것만은 참 다행이다.

링크

한가할 때 읽어볼 만한 자료. ^^

2009년 5월 29일 금요일

여행할 권리 - 너와 내가 만나는 곳에서

기행문을 좋아하는데, 많이 읽진 않는다. 좋은 기행문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이 적다기 보단, 이런저런 외국 탐방기가 워낙 많은 탓이다. 그만큼 수요가 있으니 꾸준히 나오겠지만, 아무튼 다들 기행문을 쉽게 도전할 만한 장르라고 여기나 보다.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기행문도 수필의 한 갈래이니, 가다듬은 생각을 낯선 장소라는 소재와 버무려 글로 빗어내는 솜씨가 관건이겠다. 이국 풍물 소개가 아무리 재미난 글이라도, 생각과 솜씨가 변변치 않은 글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다시 말해, 여행자의 진지한 탐구의식과 문학성이 결여된 기행문은 미지근하고 퉁퉁 불은 콩국수와 다름 없다는 거다. (왜 하필 콩국수냐고는 묻지 마시라. 어제 점심에 겪은 재앙을 다시 떠올리고 싶진 않으니.)

운 좋게도 좋은 기행문이랄 만한 책을 몇 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가운데 존 스타인벡 옹의 <Travels with Charley>와 하루키 형님의 <슬픈 외국어>는 지금도 가까이 두고 종종 꺼내본다. (전자는 <찰리와 함께 한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꽤 좋은 번역본이 나와있다. 그리고 <슬픈 외국어>는 기행문이 아닐지도…) 좋아하는 두 작가의 목소리로 듣는 이방인 특유의 시야와 정서는 곱씹을수록 쫄깃하다.

이 두 권의 책 옆에 김연수 작가의 <여행할 권리>를 꽂아두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결국 사고 만 책이다. 통념과 달리, 도서관은 책 구입비 절감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꽤 좋은 도서관이 있는 이 동네로 이사 온 뒤 오히려 책을 더 사고 있다.) 두고두고 읽을 만한 김연수 표 문장뿐만 아니라, 내 관심의 사각지대를 향하는 작가의 시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사지 않을 도리가 있나. 고백하자면, 아내 몰래 김연수 씨 책을 한 권 한 권 사 모으고 있다. 마님은 빌려 읽은 책을 다시 사 보는 걸 이해하지 못하신다. 본래 타인의 취미라는 게 다 그렇지만.

국경 없는 나라

처음부터 흥미를 잡아끄는 건 ‘국경 없는 나라’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이 반도의 남쪽 절반은 실은 ‘섬’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린 한 번이라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고민해보긴 한 걸까. 작가의 여행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작가가 말하는 ‘국경’은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넘을 수 있는 선. 둘 이상의 집단을 따로 나누되, 나뉜 것들이 필연적으로 뒤섞이는 곳. 이곳과 저곳을 분명히 가르되, 그 차이가 큰 의미가 없는 곳이다. 우리에게 그런 곳이 있던가. 우리는 사실 우리-남을 가르는 데 천재적인 족속이긴 하지. 작가는 그런 우리를 슬픈 눈으로 되돌아본다. 우리와 남이 만나는 곳, 작가가 고집스레 그런 곳을 찾아가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공교롭게도 난 우리를 둘러싼 (작가에 따르자면) 유사-국경에 대해 조금은 아는 편이다. 작년인 2008년 9월까지 남쪽 끝인 서귀포에 살다가, 이젠 북쪽 끝인 휴전선 바로 아래 살고 있으니까. 차로 5분만 나가면 북녘 땅이 훤히, 말 그대로 훤히 보인다.

작가는 휴전선 이북을 바다와 같다고 말했지만, 내겐 신기루인 것만 같다. 매일 서귀포 앞바다를 바라볼 땐 – 그렇다. 난 창문에서 바다가 바로 내다보이는 집에 살았던 것이다! – 나도 모르게 수평선 너머 미지의 무언가가 떠올렸다. 그렇지만, 휴전선 너머로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다. 잿빛 벽에 그린 그럴듯한 벽화 같기도 하다. 무언가 상상해보려 해도 저놈의 철조망만 보면 죄다 사라지고 만다. 갈 수 없는 곳이란 그런 것이다.

작가가 찾는 국경은 응당 ‘사람이 지나는 곳’이지만, 우리에게 국경은 ‘단절’을 뜻한다. 그 중간에 걸치는 건 모두 배신, 배반일 뿐이다. 단적인 예는 재일-재중교포를 대하는 남한인들의 태도다. “너 뭐냐, 한국 사람이냐, 쪽발이냐, 짱깨냐.” 정녕 그 세 가지 답안으로 그들의 정체성이 구분된다고 믿는 걸까?

여행할 권리란 뜻대로 국경을 넘을 권리,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때론 부담스러운 이름표를 잠시 떼어놓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뒷이야기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도대체 이런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비슷한 경외감이 들긴 하지만, 김연수 작품의 경우, 특히 그 배경이 대단히 생생하기 때문에 더욱 호기심이 인다.

그 대답 일부가 들었기에 이 책은 더욱 값지다. 최근작 <밤은 노래한다>에 관한 내용이 많으니까, 둘이 세트라고 해도 좋겠다.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한참 뒤에 이 책을 읽었음에도, 작품에 대한 작가의 언급(설명?)이 무척 재미있다. <굳빠이 이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다른 작품 관련한 내용도 있는 듯한데 김연수 팬 필수 아이템이랄 만하다.

단, 작품에 앞서 이 책을 먼저 읽는 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이유인즉슨, <밤>의 경우, 작가 스스로 어느 인터뷰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라고 말해놓고는, 이 책에서 속마음을 슬쩍-홀딱 털어놓기 때문이다. 이건 감상에 방해될 법도 하다. 아무래도 실수하신 듯싶지만, 그래도 작품 뒷이야기는 즐겁다.

노란 동그라미

이 책엔 결정적인 단점 한 가지가 존재한다. 280쪽이 넘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매번 약 0.6초 동안 사팔뜨기가 되곤 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양 책장 사이에 샛노란 동그라미를 그려 넣을 생각을 떠올린 이는 누구란 말인가. 아니, 그보다는 이 터무니없는 디자인을 승인한 편집자의 죄가 더 크다. 어느 날 창비 사옥 앞 – 우리집에서 차로 15분 거리다! –에서 한 손에 노란 페인트통, 한 손에 <여행할 권리>를 들고 서성이는 아저씨를 본다면 나라고 생각해도 좋다. 네놈들 미간에다 큼지막한 노란 원을 그려 넣고 말 테다!

덧말

이 책을 소개하려면 “재밌고 유익하고 강추다.”라고 한 문장만 써도 될 걸, 길게도 쓰고 말았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흥분해서 호들갑을 떤다는 거, 알만한 분은 아시겠지만.

그리고 김 작가님의 '배우 데뷔설'은 사실로 밝혀졌다. 극장행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후후.

링크

여행할 권리 - 8점
김연수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2009년 5월 24일 일요일

잘도 못생긴 얼굴

어제, 하루종일 가슴이 먹먹하고 코끝이 시큰했다.
자려고 누웠더니, 그 못생긴 얼굴이 천장에 그려졌다.
추억하며 잠들었더니, 꿈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고 일어났더니 기운이 하나도 없더라.

2009년 2월 17일 화요일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애정을 담아 작가 지망생에게

'작가 되기'에 관한 책은 은근히 많은데, 그 가운데 이 책은 단연 눈에 띈다. (판형부터 남다르다!) 작가가 되려는 스누피에게 '유명' 작가들이 조언을 하나씩 하는 구성인데, 꽤 재미있고 분량도 200쪽 남짓에 불과하고 만화가 절반 정도이기 떄문에 반나절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다.

예비 작가를 위한 흔하지만 따뜻한 조언

기성 작가들의 조언 한 편은 길어야 3쪽 정도인데, 큰 도움이 되는 가르침부터 영 뜬구름 잡는 소리까지 조언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글을, 특히 소설을 쓰고자 하는 독자라면 대체로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예비 작가를 자극하고 격려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작가 지망생이라면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는 데 꽤 도움이 될 듯.

하지만 책 속 조언들이 아주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소설가를 꿈꾸며 '작가되기' 책을 열심히 읽은 당신이라면,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말들이 많다. 그걸 한 문장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고민할 시간이 있으면 한 자라도 더 써라. 다 써봐야 거절 당하겠지만 좌절하는 순간 소설가의 꿈은 영영 안녕이다.

이에 관련해서, 얼마 전 돌아가신 존 업다이크 옹 – 고인에게 평화를! – 의 말씀을 참고할 만하다.

정말 대단한 방법을 알고 있다면, 나 혼자만 알고 있을 겁니다. 안 그러면 업계가 너무 복잡해지거든요.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방법'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소설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에게는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나도 어릴 적엔 – 누구나 한때 그러하듯 –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른바 '작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의지박약'이라는 만성 질환 때문이었는데, 그때 만약 이런 조언들을 들었더라면, 적어도 노력은 더 해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책의 미덕 한 가지. 통독할 필요 없이 틈날 때마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무방하다. 고로, 화장실 비치용으로 아주 좋다.

누구신지?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던 건, 조언을 주신 '유명' 작가님들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작가 지망생을 위해 친절한 조언을 베풀어 주신 건 정말 고맙지만, 도대체 누구신지 알 수 없으니, 미심쩍은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내가 읽어본 작가는 시드니 쉘던 뿐. (아직 살아계셨군요.)

나 같은 속물들은, 기왕 조언을 들을 거라면 '진짜' 유명인의 말씀을 선호한다. 폴 오스터나 조이스 캐롤 오츠 같은 분이 한 말씀 해주셨다면, “오오 역시!!” 했을 텐데. 이건 뭐, 누구신지.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난 이 책보단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더 유익한 듯싶다. 미국식 장르문학 쓰기를 배우려면, 스티븐 킹의 책이 훨씬 좋다. 첨삭 원고까지 공개한 킹 사마에 비하면, 이 책의 조언들은 아무래도 약하고, 너무 짧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책의 공동 편저자인 몬티 슐츠는 <피너츠>를 그린 만화가 故 찰스 M. 슐츠의 아들이다. 그 자신도 소설가지만, 아마 ‘아버지의 아들’로 훨씬 더 유명하겠지. 책 분량의 반을 차지하는 스누피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빠를 잘도 우려먹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뭐, 그러면 또 어떤가? 어쨌든 자기 아빠고, 우려냄의 결과물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책을 읽기 쉽게 만든다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니까. 또 스누피는 보고 또 봐도 귀여우니까.

다른 작가들의 창작법이 궁금하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을 번역한 소설가 김연수 님은 아마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작품을 쓰는지 무척 궁금하신가 보다.<청춘의 문장들>에서도 작가들의 집필 방법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데뷔한지 16년이나 된, 그리고 이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진짜 유명 작가인 그도 자기 창작법에 대한 불안이 있는 걸까? 아니면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배려로 읽어야 할까?

머리말을 놓지지 마세요

아참, 이 책을 읽으실 분이라면 몬티 슐츠가 쓴 머리말을 꼭 읽으시길. 난 사실 이 책의 내용을 통틀어서 머리말이 가장 좋다. 아버지에 대한 회고담인데, 문학작품을 매개로 평생 아버지와 마음을 나누었던 저자의 추억이 부럽다. 무척.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6점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한문화

2009년 2월 9일 월요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 초보 마르크스주의자를 위한 지침서

마르크스주의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혁명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속한 사회-경제 체제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지는 아주 자-알 알지만, 마르크스가 약속한 “다음 세상”이 더 좋을 지는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세상을 알면 알수록, 좌파가 되지 않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현실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힘있는 소수가 힘없는 다수를 부당하게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 때, 마르크스의 근대 문명 비판은 좋은 길잡이가 된다. 우리의 불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려면, 마르크스에서 묻는 게 가장 빠르다.

도대체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이 책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설명하고, 사회 이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을 정리한 내용이다. 일반 노동자 대상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내용이 굉장히 쉽고 현실적이다. 다양한 사회주의 분파를 포괄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사회주의적 사회 인식을 이해하기에 좋은 교재다. 제목 그대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훌륭한 대답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올바른 노동자가 되는데 필요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주장이 명료하고 예상되는 반론을 재반론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논쟁법을 배우는 데도 좋다. <자본론>의 요약이 아니라, 당장 벌어지는 일들의 원인과 대처법을 설명하기 때문에 재미있고 유익하다. 상당히 적은 분량이지만 한 쪽도 버릴 것 없이 알차다. 소련이 건재하던 1980년대에 쓴 글이 2009년에도 유효할지 의심스럽겠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비판을 쓴 건 19세기 말이다. 5장 ‘사회주의자는 다음에 대해 무어라고 주장하는가?’를 읽다 보면, 역사가 거의 진보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이 상당히 원론적이고 강경하다는 점은 미리 각오해야 한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면 오직 혁명 뿐”이라는 입장이다. 꽤 세다. 좌파, 진보, 사회주의, 공산주의, 빨갱이 등의 용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은 분명 오해할 만하다. 아니, 이 정도면 단순한 오해가 아니다. ^^

늘 그렇듯 책은 읽는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기는 버겁지만, 지배계층이 억압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분석은 대단히 날카롭고 믿을 만하다. 4장 ‘지배전략’과 5장을 읽다보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보수세력과 정당, 정부, 재벌, 보수언론 들이 굉장히 교과서적 수법을 구사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 가운데 일부를 인용해 본다.

지배계급…은 법과 질서를 열렬히 외쳐 댄다. … 법이 지키는 것은 … 주민 전체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경제는 반드시 자본가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를 낳게 마련이므로, 법도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게 돼 있다. … 지배계급은 고위 법조인들을 꽉 잡고 있다. 판검사들은 대부분 자본가들의 자녀거나 사위다. .. 그 자신이 상층과 중간 계급 소속(이다). … 법은…가난한 사람에 맞서, 부자를…착취하는 자들을…지금 힘깨나 쓰는 자들을 보호해 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야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국가가 탄압을 강화하는 데 범죄의 실제 증가나 “민생치안” … “법과 질서”라는 구호만한 것은 없다. 범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범죄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 108쪽

반대 의견을 묵살하는데, ‘법 질서 수호’는 즐겨 사용되는 수법이다.

(애국심은) 국가의 힘과 권위를 강화하는데, 이는 피착취자에 대한 착취자의 지배를 유지하는 주요한 동력이다. … ‘우리 산업을 구하자’, ‘우리 나라가 다시 나아가도록 만들자’라는 말로 가득 차 있지만, 그건 ‘우리’ 산업, ‘우리’ 나라가 아니다. 둘 다 모조리 지배계급의 것이다. – 116쪽

애국심과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대기업 광고는 볼 때마다 섬뜩하다.

덧글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겁먹거나 흥분할 것 없이, ‘계급 없는 대안사회 건설’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사회주의자들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 모순적인 계급 구분 없이 모든이가 소중한 존재로 존중받는 세상일 거다. 누군들 그런 세상을 바라지 않을까? 문제는 항상 방법이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 8점
존 몰리뉴 지음, 최일붕 옮김/책갈피

2009년 2월 5일 목요일

알라딘의 선물, 밤은 노래한다

알라딘에서 선물을 보내왔다!

읽고 싶던 <밤은 노래한다>. 그것도 김연수 작가의 친필 서명이 담긴 ‘귀한’ 책이다.
작년 말 “2008 올해의 저자” 투표에 참여했는데, 운 좋게도 경품에 당첨된 거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다. 기쁜 마음에 받자마자 인증샷 찍고 자랑부터 해 본다.

밤은 노래한다 표지

밤은 노래한다. 유두가 흠좀...

밤은 노래한다

표지 디자인과 일러스트가 멋지다!

밤은 노래한다

뒤도 멋있지만, 카피가 좀.

밤은 노래한다 저자 서명

짜잔!

밤은 노래한다 저자

문장뿐 아니라, 손글씨도 참 예쁘다.

아아, 올해 들어 가장 황홀한 오후다.

2009년 1월 30일 금요일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 홍세화가 만난 열린 마음의 빠리

홍세화 씨의 신문 칼럼을 종종 읽는데, 여러 모로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긴 글을 읽고 싶은 마음에, 대표작 격인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자>을 '이제야' 읽었다. 베스트셀러라면 괜히 미워하는 내 별난 심보 덕분에 초판 발행 후 13년만이다.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

아쉬운 점도 있지만, 생각거리가 많고 재미있는 책이다. 보통의 외국생활 회고담보단 영양가가 훨씬 높다. 피상적인 풍습의 비교에 머무르지 않고, 그 근원인 ‘생각의 틀’을 비교한다. 프랑스의 민주주의 정신과 똘레랑스를 읽다 보면, 우리에게 강요된 생각의 틀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돌아보게 되고,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로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한 사회가 발전하려면 외부 세계와 주고받음이 필수적이다. 해외여행이나 유학도 좋지만, 타인의 경험을 읽는 것도 아주 좋다. 특히 이 책은 ‘나가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의 모범 답안에 가깝다. 20년 이상 관찰한 결과물이므로 일시적인 호감-반감이 아닌, 프랑스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인다.

아쉬운 점은 산만한 구성이다. 아마 출판사 측에서 재미를 배가할 목적으로 내용 순서를 꼬아놓은 듯한데, 덕분에 가벼운 인상만 배가됐다. 시간순서에 따르면서 드문드문 뒤를 돌아보는 구성이었으면,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 거다. 플래시백 남발은 독자의 집중을 방해할 뿐이다.

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쓴 책이니만큼, <홍세화 칼럼>과 같은 밀도 높은 주장은 없지만,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을 엿볼 수 있어서 좋고,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도 많다. 아직까진 홍세화 씨의 존재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텐데,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읽혔다는 사실이 반갑다.

침묵하는 민주주의는 없다

읽다 보면 화두를 여럿 발견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
개정판의 136쪽을 보면, 저자가 프랑스인과 말다툼한 일화 한 토막이 실려 있다. 수수료 문제로 현지인 영업사원과 심한 논쟁을 벌인 저자는 “이제 저놈하고 말도 안 섞어!”하고 앙심을 품지만, 다음날 그 프랑스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저자는 그 모습에 당황하고 만다. 이 일화 뒤에 저자가 덧붙인 해설은, 그 프랑스인은 저자의 ‘주장을 반박’했을 뿐이지만, 천생 한국인인 저자는 ‘내 주장을 반박한 그 사람을 미워’했’다는 것이다.

평소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던 터라, 저자의 지적이 통쾌했다. 점점 나아지는 추세라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논쟁의 기술’이 부족하다. 논쟁은 드물고, 언쟁(말싸움)은 너무 흔하다. 논쟁은 논리의 싸움, 주장 vs 주장인 데 반해, 언쟁은 비생산적인 자존심 싸움이고 그 결과는 대개 미움이다. 의견이 다르다는 게 증오의 이유가 되는 사회가 과연 정상일까?

논쟁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넌센스다. 수없이 많은 주장으로 가득 찬 사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려면, 토론과 논쟁은 필수다. 다수결의 논리는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다수결 ‘승부’가 민주주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싶다.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노력 없이, 승자가 권력을 오로지하는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 아닌가. 일단 승자가 되면 소수의 의견은 묵살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논쟁 자체를 거부하는데,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의 독재’일 뿐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우리 스스로 입과 귀를 열어야 한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개똥'이다. 원하는 바를 떳떳이,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자. 그리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더라도 미워하지 말자. 이해하고 설득하자.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링크 – 홍세화의 아름다운 나라, 홍세화 칼럼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6점
홍세화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2009년 1월 4일 일요일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 수없이 많은 나를 찾아서

김연수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익숙하면서 새롭다. 언뜻 8,90년 대 한국소설의 느낌이 나지만, 실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소설이다. 옛 냄새가 살짝 감돌 뿐, 분명 21세기의 소설이다.

꼴랑 단편집과 수필집을 한 권씩 읽고 뭐라고 평하기 남세스럽지만, 이 단편집을 읽으며 "김연수는 진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틀림없이 좋은 작가다. 읽는 내내, '즐거움이 솟아나는 샘'을 발견한 흥분과 떨림을 만끽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 작가라도 내가 몰랐다면 발견! ^^)

변신에 능한 초능력 소설가

훌륭한 소설가임은 분명한데, 내 취향인지 확실치 않다. 단편집 전체를 보면 아주 좋은데, 수록된 몇몇 작품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건 아주 좋고, 싫은 건 아주 싫다.

까닭인 즉슨, 작품마다 형식과 분위기와 문체가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쓴 작품이 맞나 싶을 만큼, 작가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작품이 요구하는 대로 얼굴과 말투를 척척 바꾸는 문장의 달인. 김연수처럼 변신에 능한 작가는 처음이다. 이건 노력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경지처럼 느껴진다. 마치 초능력처럼.

최고급 단편, 아름다운 시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뿌넝숴(不能設)>, <거짓된 마음의 역사>, <남원고사>, <이렇게 한낮 속에 서있다> 들이다. 형식과 내용 모두 당대 최고 수준의 단편이다. 아름다운 문장, 참신한 소재, 재미있는 서사, 실험적 형식 등 장점이 가득하다. 누가 한국 단편문학의 현주소를 묻는다면, 당당히 이 단편집을 내놓으리라. 난 영미권 단편을 굉장히 좋아하고, 우리 작가들의 단편은 살짝 시시하게 여겼는데, 위의 작품들을 읽고는 생각을 싹 바꿨다. 우리의 단편문학은 정말 '진보'하고 있다.

김연수 표 '문장'은 문장에 정신 팔려 책읽기를 잊을 만큼 미문(美文)이다. 누구는 "김연수 글은 잘 안 읽혀!"라고 불평하시는데, 당연한 말씀! 김연수의 문장은 그대로 시(詩)인데, 시를 속독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문장마다 가득한 시적 아름다움을 음미하려면 당연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공들인 문장을 읽을 땐 독자도 공을 들일 의무가 있다.

그런데! 내 상상 속 김연수는, 문장을 골백 번 가다듬는, 따라서 작품수가 적은 '은둔하는 장인형 작가'였는데, 의외로 작품수가 많은 편이라 놀랐다. 어쩌면 그냥 쓰면 이런 문장이 줄줄 나오는 지도 모른다. 으음, 그건 좀 반칙인데.

감상주의는 싫다

이제 싫은 부분을 말해보자.

첫 작품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은 솔직히 지루하고 짜증스럽다. 행동은 없고 생각만 있는 '옛날' 한국소설을 그대로 닮았다. 그 다음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는 화자의 위치가 재미있긴 하지만 지루하긴 마찬가지.

맨 처음 실린 작품이 이렇게 재미없는 건 문제다. 첫 작품이 <...농담>이 아니었다면, 만 부 정도는 더 팔리지 않았을까? 서점에서 책을 고르던 분이 이 시시한 첫 작품을 읽고서도, 과연 이 책을 샀을까? 나라면 안 샀을 거다. 그 덕에 뒤에 실린 깜짝 놀랄 만큼 재미있는 작품들을 즐길 기회를 놓치고 말았겠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특히 공 들인 작품 냄새가 난다. 어떤 말을 하려는 지는 대충 짐작가지만, 감응하긴 어렵다. 그건 아마 작가와 나의 '세대 차이' 때문인 듯. 작가는 나보다 10살 정도 윗세대인데, 그 세대의 감수성이란 게 내겐 간혹 촌스럽게 느껴진다. 내 어린 시절을 그 세대인 사촌형과 한 방에서 보낸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관찰자 입장에서 낱낱이 들여다봤으니까. (지금 막 다 읽은 작가의 수필집 <청춘의 문장들>의 독후감을 쓰게 된다면, 그때 이 얘기를 더 해보련다.)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은 익살스러운 문체가 재미있긴 한데, 이야기 자체는 별 재미가 없다. 꽤 매력적이고 뻔뻔男인 주인공의 활약상이 조금 더 펼쳐졌다면 재미있는 액션 시대극이 나왔을 거 같은데.

이 작품들이 싫은 이유는 '감상주의' 때문이다. 작가는 틈날 때마다 내면으로 침잠하려고 한다. 그리고 공감하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내가 읽고픈 건 감정이 아닌 행동이다. 행동으로 감정을 미루어 짐작하는 재미를 즐기고 싶은 거다. 감정을 시시콜콜 나열하는 건 잔소리처럼 들린다. 잔소리는 재미없다.

예를 들어, 편지 형식인 <거짓된 마음의 역사>은, 감정의 묘사가 전혀 없지만 화자의 감정이 여실히 느껴진다. 반면, <...농담>이나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의 경우, 감정을 폭포수처럼 쏟아 붓지만 오히려 감정이입이 어렵다.

난 김연수 씨처럼 훌륭한 작가가 더욱 더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는데, 작가는 어느 선에서 스스로 담을 쌓는다. 나처럼 마음은 메마르고 머리는 돌대가리인 독자와는 소통하기를 거부한다. 그건 정말 아쉽다. 그럴 거 같진 않지만, 만약 이런 재능을 지닌 작가가 "선수끼리 돌려 있는" 소설을 쓴다면 난 정말 크게 실망할 거다.

‘나’는 누구인가

실험적 요소가 여럿 눈에 띄는데, 그중 '화자(話者) 알아맞추기'가 재밌다.

이야기는 다짜고짜 ‘나’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독자는 어리둥절. 초조한 마음으로 문장 속으로 몰입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독자는 그 나름의 ‘나’를 필사적으로 떠올린다. 드디어 ‘나’의 몽타주를 완성한 독자가 불안감을 떨치고 슬슬 이야기를 즐기는 순간! 작가는 독자의 상상을 배신하는 뜻밖의 ‘나’를 드러낸다. 때론 “뭐야!”하고 살짝 화도 나지만, 이런 사기는 너무나 즐겁다.

소설 속 ‘나’를 상상하다보면, 오히려 독자의 머릿속 구조가 드러난다. 이런저런 편견에 사로잡힌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작품마다 전면에 나선 ‘나’는,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저마다의 진실’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애초에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나’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해석하는 ‘나’에겐 나의 진실이, 당신에겐 당신의 진실이 있다. 진실/거짓의 구분이 흐트러지면, 문학의 중요한 역할인 ‘공감’의 폭이 확장된다. 덕분에 이 단편집의 재미는 한층 더 깊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권말에서 작가는 이 단편집이 독서의 결과라고 말한다. 다른 책을 읽고 난 뒤, 그 내용을 토양으로 자라난 이야기란 말씀. 그 책들의 목록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 작품집의 패러디적 성격과 상호 텍스트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남원고사>는 그야말로 단적인 예.)

또, 작가와 화자를 분명히 구분한 점도 재미있다. 작가 자신이 아닌, 수많은 ‘나’의 존재가 이 단편집의 특징인데, 액자구조의 변형으로 보면 맞을 것 같다.

이 두 특징을 보면, 탈근대주의, 소위 포스트모던 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도 될 것 같다. 드러내진 않지만, 작가 스스로도 문학 이론에 해박한 것이 분명하고, 탈근대 문학에 호응하는 듯한 태도도 엿보인다.

그런데 권말 평론을 쓰신 문학평론가 김병익 씨는 이 작품의 탈근대성을 극구 부인한다. 그분은 이 작품집을 전통적 한국소설의 연장으로 보는데, 그건 <...농담>이나 <...설산>에 국한된 얘기가 아닐까 싶다. 그 외 작품들은 내가 보기엔 정말 새로운데, 전문가의 눈에는 아무래도 다른 듯. 뭐, 그것도 좋다! 사실 내게 정말 중요한 건 내 취향이다. 나는 평론가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고, 다만 책 좋아하는 한가한 아저씨일 뿐이니까.

그리고

아무튼 난 김연수 작가의 (아직은 조금 의심이 남은) 팬이 됐고, 사랑하는 알라딘에서는 작가의 친필 서명이 담긴 신간 <밤은 노래한다>를 보내주신단다. 아아,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알고 보니 작가는 꽤나 활동적인 블로거다. 왠지 모를 섭섭한 기분. 남 몰래 연모하던 책방 아가씨, 알고 보니 애 딸린 유부녀. 뭐, 그런 기분.

링크 – THE ARCHIVIST Completed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 8점
김연수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