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일 수요일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촌평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감독에 대한 호감 분포가 이상하리만큼 광범위한 이유가 궁금했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내로라하는 평론가와 감독들이 하나같이 ‘엄지 업!’을 하는 걸까.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을 본 까닭은 그렇다.

스포일러 없는 짧은 감상을 남겨본다.

재밌게 보긴 봤는데, 솔직히 영화적으로 –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 대단해 보이진 않는다. 툭툭 던지는 듯한 이야기 흐름과 낮고 정직한 시선이 좋긴 한데, 별 5개는 과한 평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클리셰에서 자유로운 점은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별 4개 이상을 주긴 힘들다. (솔직히 요즘 내가 좋아하는 류의 영화는 아니다. 요즘은 적당히 기교를 부리는 영화가 좋더라.)

영화관에서 보면, 감상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황량한 아일랜드의 언덕을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장면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하다. 큰 화면에, 소리 좋은 영화관에서 제대로 봤다면, 확실히 전체적 인상이 크게 달랐을 듯. 예를 들어, 데미안이 ‘배신자’들을 처형하는 장면은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는데,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와 거친 숨소리, 넓게 펼쳐진 스산한 황무지 언덕을 제대로 느꼈더라면 그 울림이 30배는 더 크지 않았을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 아닐까 싶다. 영화기술적으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아일랜드 독립이라는 간단치 않은 소재를 낮은 눈높이에서 섬세하게 그린 점이 좋은 평가의 이유인 듯싶다. ‘가해자’인 영국을 인정사정 까는 건 지나치게 일방적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어설프게 식민 지배의 이로움을 중얼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아니나 다를까 개봉 후 영국에서 역사적 사실 관계에 대한 말이 많았고, 로치 감독은 배신자 소리도 들었다.)

아일랜드 독립 투쟁과 독립 이후 분열은 당연히 우리의 독립 과정과 겹쳐 보인다. 어쩌면 그 때문에 오히려 이 영화에 대한 감흥이 덜 한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이야기니까.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 어이 없고 부끄러운 일이라면 누구 못지 않게 많이 겪은 게 바로 우리니까. 그렇지만 우리말이 게일어처럼 애국을 상징하는 ‘박제’가 되지 않은 것만은 참 다행이다.

링크

한가할 때 읽어볼 만한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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