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일 토요일

Undercover Economist - 쉽게 읽는 경제학 콘서트

<경제학 콘서트>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책인데, 얼마 전 번역서를 읽다가 실망스러운 번역 때문에 읽다 말았다. 책의 내용은 좋은 듯싶어, 원서를 사서 다시 읽었다. 역시 괜찮은 책인데, 우리말 번역이 책을 망쳐도 너무 망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YES24의 <2006 네티즌 선정 도서>가 된 것을 보면, '네티즌' 독자들의 독해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은 꽤 읽을 만한 경제학 교양서인데, 내가 좋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커피, 교통체증, 주식시장, 세계화 등 친근하고 일상적인 소재로 독자의 흥미를 돋우고,
  2. 쉽고 위트 넘치는 저자의 설명과 문장력이 돋보이며,
  3. 경제학 문외한을 위한 기본적인 개념을 두로 다뤘다.

경제학 공부할 겸, 영어 공부할 겸

뒤로 갈수록 조금씩 지루하지만, 꽤 재미있는 경제학 교양서다. 어렵지 않아서 좋다. 경제학 개론서에서 한 문단이면 설명할 내용을 상세한 실례를 들어가며 한 장(chapter)에 걸쳐 설명하니, 교양 경제학 개론 빵구난 대학생들에겐 구원과도 같은 필독서다. 고등학생 정도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니, 더 이상 “경제학은 어려운 거야”라는 변명은 끝.

다만 우리말 번역본 <경제학 콘서트>의 번역이 수준 이하라는 점이 아쉽다. 대학 신입생 정도라면 원서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일단 영어가 쉽다. 260쪽이 안 되는 분량(영국 발행본 기준)이고, 단어도 평이한 수준이다. 그야말로 일반인 독자 대상의 책이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한테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해리포터를 원서로 읽는 수준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버겁더라도 시간을 들여서 이 책 한 권을 뗀다면, 영어 실력도 경제학 지식도 껑충 성장할 것 같다.

자, 그러면, 이제 욕을 시작해볼까?

뻔하디 뻔한

내용이 평이해도 너무 평이하다. 지나치게 교과서적이라고 할까.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경제학 교양서를 열심히 읽는 당신이라면 뻔하고 다 아는 얘기를 되풀이한다. 희소성, 차액지대, 비교우위, 시장의 실패, 정보 불균형, 게임 이론, 인센티브 등등. 단어만 나열하면 어려운 소리 같지만, 요즘 나오는 어느 경제학 책을 펼쳐도 다 나오는 얘기다. 그나마 다른 경제학 교양서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처음에 나오는 ‘커피 전문점의 비밀’ 정도다. 그리고 '너무나 교과서적이라는 점'도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아마 그래서 더 많이 팔렸겠지만.

한국이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수혜자?

또 한 가지.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저자는 시장 경제와 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자로 우리나라, 남한을 꼽았다. 그 반대인 계획 경제로 인한 낙오자 대표로는 북조선을 꼽았고. 저자의 주장은 남한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은 시장 경제를 도입했고, 세계 시장과 교역하며, 다국적 자본에게 시장을 개방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시장 경제를 통해 성장했다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아다시피, 우리의 경제적 성장은 주로 ‘개발 독재’라고 불리는 박정희 정권 때 이뤄졌다. 이때 우리의 유한한 자원이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의 원리'에 따라 배분-사용되었던가? 아니다. '권력자의 계획'에 따라 정부가 직접 배분했다. 독일에 온 국민이 아부해가며 얻어온 차관과 일제에 의해 우리 민족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금 등이 어떻게 쓰였던가? 몽땅 산업 인프라와 재벌에게 밀어줬다.

즉, 우리의 경제 성장은 독재 권력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 '계획 경제' 아래 이뤄졌다. 국민의 직접적인 경제적 희생이 그 발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1997년의 '그 일'은 계획 경제의 부작용으로 해석할 수도..) 물론 미시적인 면의 시장경제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흔히 말하는 ‘한강의 기적’은 계획 경제 덕분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우리는 ‘국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성장을 일궜고, 이는 소련이나 중공이나 북조선의 체제와 거시적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에겐 미국이라는 통 큰 구매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요즘의 세계화’와는 별 무관계한 이야기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특수하다

우리의 경제성장은 ‘예외’적인 부분이 많은데, 서양의 일부 경제학 서적들은 마치 당연한 경제 발전의 수순인 양 묘사한다. 식민지 출신 국가 가운데 우리와 같은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우리 말곤 없다. 꼭 우리가 잘났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정말 예외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에 큰일을 이뤄냈다. 우리의 발전 속도를 다른 후진국들에게 적용하는 건, 그야말로 서구 제국주의의 시각이다. “한국을 봐라. 성공했지 않냐? 너희가 가난한 건 못났기 때문이지,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건 정말 가진 자의 논리다.

그리고 저자는 다국적 기업들의 후진국 현지 공장의 비인도적인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섣불리 그 이론 – 근로조건을 개선하면, 결국 그들의 일자리를 뺏는 셈이라는 – 을 비판하기엔 내가 아는 바가 너무 적지만, 한 가지는 도저히 대충 용납할 수가 없다.

‘한국의 경우, 경제가 성장하니까 저절로 근로조건이 좋아졌다’는 주장은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다. 우리의 평균 임금이 상승하면서, 다국적 기업의 공장 – 이른바 sweatshop – 이 철수한 건 사실이지만, 근로조건의 개선은 이와는 별개로 봐야 한다. 내가 아는 한, 노동조건의 개선은 노동운동과 민주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저자는 경제가 성장하면 모두 해결된다는 식이다. 이건 '시장 경제는 완벽한 경제체제다'라는 주장과 다름없는 헛소리다.

또, 저자의 주장이 옳다면, 80년대의 노동운동은 다 헛고생이라는 말인데, 땀 흘려 일하는 한국인 가운데 이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제법 잘 살게 된 지금도 정규 근무시간을 훨씬 초과해서 일하기를 강요받는 사람들이 아주 아주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노동조건은 아직도 열악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희소성의 힘’. 그 힘이 기업에게 있는 한 노동자는 시장 밖의 무엇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은 '희소성의 힘'을 소유한 자에게만 유효하다.

아무튼 식민주의와 후진국 노동력 착취의 정당화에 한국의 사례가 이용되는 것은 정말 불쾌하다. … 휴,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리하면, ‘좋은 책이지만 다른 관점의 책도 많이 읽어보세요’가 나의 결론이다. 끝!

2007년 10월 11일 목요일

남한산성 - 고통과 치욕 속에서 찾는 삶의 무게

공들인 문장을 읽는 즐거움

작가 김훈의 문장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호흡이 긴 문장이 많고, 요즘엔 낯선 옛 낱말들도 많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읽고도 뜻을 알지 못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이야기와 상관없이 무심하게 펼쳐지는 풍경 묘사는 한 단어 한 단어 곱씹을수록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깨닫게 한다. 김훈 소설의 큰 매력이다.

아주 간결한 문체 또한 작가의 장기다. 힘이 넘치고 묵직한 단문은 헤밍웨이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단문이 언어적 ‘아름다움’을 돋보인다면, 김훈의 단문은 극적인 장치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듯싶다. 소설 속 인물들의 고독과 비장감은 무심하고 묵직한 단문들로 더욱 돋보인다. 유독 남성 독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남성적인 단문일 게다.

날 것과 남성다움의 미학

내용은 알려진 대로 병자호란 동안 인조 임금이 파천한 남한산성 안의 이야기다. 역사소설은 흔히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쪽으로 빠지곤 하는데, 이 소설은 그와는 거리를 둔다. 오히려 우리 역사의 수치스러운 한 시기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극한의 고통과 치욕을 감내하고 살아남는 과정이 이 소설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비판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고두고 읽을 만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픈 작품이다. 물론 내 취향과 잘 맞기 때문인데, 자학적인 남성다움의 미학이라든가, 문제적 인물들에 대한 옹호, ‘날 것’ 냄새가 진동하는 묘사 들은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싫을 수도 있겠다. 작가의 팬으로서 이에 대한 변명을 조금 해볼까 한다. ‘남성다움의 미학’은 요즘에는 후진 것인지도 모른다. 메트로 섹슈얼이 득세한 세상에 ‘남성다움’이라니. 하지만 나를 비롯한 어떤 부류의 남자들은 분명 남성다움에 대한 동경이 감추고 살아간다. 여성차별이나 마초, 폭력과는 다르다. 그냥 고도산업사회에 길들여진 순한 남자들의 깊은 곳에 감춰진 비밀스런 환상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모욕으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내게 김훈 소설은 고급스러운 홍콩 느와르와 같은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하드보일드한 인물들은 저마다 주어진 일을 수행할 뿐이다. 해야 하니까 할 뿐. 적이나 약자에 대한 연민에 괴로워하지만, 소임을 맡은 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로 잡아먹을 듯 논쟁하는 척화파의 김상헌과 화친파의 최명길 또한 어전에서 물러나면 서로를 존중하며 연민의 정마저 보인다. ‘너의 가련함은 알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구나.’라는 독백이 장면마다 들리는 듯하다. 이런 설정은 고통을 초래한 지배층을 위한 변명으로 읽을 수도 있고, 운명을 감내하는 조용한 영웅의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역사보다는 사람

작가는 의도적으로 병자호란에 이르는 과정을 생략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자체에 집중한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지배층의 무능과 아집을 운운하는 건 무의미하다. (이미 다른 작품들이 실컷 욕해줬기도 하고.) 그저 고통과 치욕을 관통하는 모습을 별다른 설명없이 ‘보여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부각되는 것은 ‘삶’에 대한 의지다. 아니, 의지도 아닌 본능이다.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지만, 역사는 그야말로 배경일 뿐이다. 진짜 주인공은 ‘고난 속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삶’이다. 왕도, 신하도, 백성들도, 조선이라는 나라도, 극한의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풍파에 산화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그 결과, 우리가 이 땅에서 그들을 우리의 조상이라 여기고 살고 있다. 작가가 묘사하는 삶은 고통스럽고 때론 추하지만, 살아있는 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삶은 결과론일 수밖에 없다. 살아남은 쪽이 진짜 승리자다.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의 마지막 단락에게 작가의 이런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약간 진부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분 좋은 끝맺음이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다른 분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했다. 우리 사회는 분명히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동시에, 약소국이었던 과거에 대한 자조(自嘲)적인 말들도 많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척화론과 주화론 사이에서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는 작가에 대해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명분과 이득도 열심히 살아남은 사람 앞에서는 초라하게 보일 뿐이지 않은가.

남한산성 - 8점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8일 월요일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 위트 넘치는 경제학 사상史

국내에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로 번역된 책.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고, 국내에서도 아마 꽤 팔렸을 거다. 부제는 ‘현대 경제사상 입문 an introduction to modern economic thought’. 이게 제목이었다면 아마 베스트셀러는 어림없었겠지만, 내용은 부제가 정확하게 설명한다. 경제학의 역사를 중요한 경제학자와 학파를 중심으로 재밌게 잘 풀어낸 명저다. 저자의 촌철살인의 유머가 지루할 법한 내용에 좋은 양념이 됐다.

아마 <경향신문>에 실린 서평인 거 같은데, 어떤 교수님이 “저자의 자유주의적 관점이 거슬린다.”라고 쓴 구절이 기억난다. 내겐 아주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저자는 분명 사회주의적 이상에 대해 냉소적이다. 내 정치적 성향은 중도 – 혹은 국내 기준으로 중도 좌파? – 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내 기준에서 한 걸음 반 정도 오른쪽에 서 있다. 어쩌면 두 걸음 정도?

시장경제 자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마르크스에 대해선 가혹하리만큼, 인격모독에 가까운 표현도 서슴지 않지만, 그 외 여러 (시장) 경제학파에 대해선 비교적 공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각 장마다 각 학파의 학설을 그들의 입장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독자가 저자의 의도를 오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조금 더 읽어보면, 그에 대한 반론이 반드시 뒤따라 나온다. 이 책은 읽다가 중간에 그만두면 아니 읽은 만 못하다. 주장과 반론 모두를 읽어야만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불필요한 선입견을 피하려면 저자가 ‘아빠 부시’ 시절 백악관 경제 관료였다는 사실은 모르는 편이 낫겠다.

경제학 책치고는 무척 재미있고 쉬운 편이다. 그래프와 수식이 난무하는 일반 경제학 개론서를 절간 염불소리에 비하면, 이 책은 마당놀이라고나 할까. 경제학 이론뿐만 아니라, 경제학자의 개인적인 성장배경이나 역사적 배경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주 많다. 경제학 교수인 저자의 강의를 꼭 들어보고 싶을 만큼, 저자는 머리 아픈 경제학을 재미있게 포장하는 재주가 대단하다.

다만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경제학 개론서를 한권 옆에 끼고 보는 편이 좋겠다. 모르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다른 책과 인터넷을 찾아보며 읽었는데, 그냥 개론서를 읽는 것보다 학습효과가 10배 이상은 되는 듯. 학교에서 교양 경제학 개론을 들을 땐 좀체 이해가 어렵던 내용도 거짓말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학 신입생들의 경제학 개론 보조 교재로 이 책을 활용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걔네들이 경제학에 관심이나 있을까. 후후.

오랜만에 원서를 읽었는데,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애먹었다. 다 읽는데, 다른 책의 2배 이상 걸린 것 같다. 보통은 문장 내용만 이해되면 부사나 형용사는 모르더라도 사전을 찾지 않는데, 이 책은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어적 문장이 워낙 많은데, 그런 문장들은 긍정/부정이 형용사나 부사로 결정돼버리기 때문. 형용사와 부사를 무시하면 의미를 정반대로 이해하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생소한 경제학 개념에다가 해석까지 꼬여버리면, 참 힘들다. 게다가, 19세기 학자들 편에서는 19세기 단어를 사용하고, 당시의 원문들을 팍팍 인용한다. 멋있긴 하지만 나 같은 비숙련 영어사용자에겐 아무래도 버겁다. 위트 넘치는 문장이 정말 재미있긴 한데, 그 유머를 이해하는 시간이 꽤 걸린다. 진도가 너무 안 나가니 정말 재미있는 문장도 가끔은 짜증스럽다. 후후후.

하지만 어느 정도 영어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이 책을 거치면서 실력을 한 단계 높힐 수도 있겠다. 번역판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다면 번역판을 읽는 게 더 좋을 듯. 원문의 말장난을 어떻게 번역했을지 궁금하다.

굉장히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지만, 경제학 교양서가 처음이라면, <괴짜 경제학>이나 <경제학 콘서트>를 먼저 권하고 싶다. 그런 류의 비교적 쉬운 책을 읽고 난 뒤 경제학에 대한 더 큰 흥미가 생겼다면, 본격적인 경제학 개론서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면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paperback) - 8점
토드 부크홀츠 지음/Plume

2007년 8월 28일 화요일

마시멜로 이야기 - 뻔한 교훈의 가치

한동안 9시 뉴스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책이다.

자기계발서는 되도록 멀리하는데, 집에 굴러다니기에 호기심에 읽어 봤다. 동생이 군복무할 때 산 책인 모양이다. 앞의 몇 줄을 읽어볼 요량으로 뒤적이다보니, 어느덧 책의 중반이다. 정말 쉽게 읽힌다. 큼직큼직한 활자, 쉽고 교훈적인 내용에, 얇은 두께까지! 대한민국 베스트셀러의 필수 조건을 두루 갖췄다. 읽을거리가 없는 읽을거리. 최소한의 지적 투자로 책 한 권 독파했다는 뿌듯함! 게다가 엄청난 광고 공세로 조성한 군중 심리까지. 베스트셀러의 필승공식. 이 ‘성공학’ 책의 대성공으로 잘 나가던 아나운서 한 명이 추락해버린 점은 아이러니다.

내용을 보자면, 어디 보자, 뭐, 별 내용 없지만서도 전개는 나름 흥미진진하다. 다른 성공학 책들이 선문답식의 헛소리인데 비해, 이 책은 꽤 구체적이다. "부자되고 싶으면 당장 돈을 모으기 시작해라!"는 식. 대단한 성공의 비밀을 알려줄 것 같은 ‘긴장감’마저 감돈다. 독자의 수준을 초등학교 저학년에 맞춘 점이 살짝 기분 나쁘긴 하지만, 사실 ‘마시멜로’에 관한 한 애나 어른이나 크게 다를 건 없겠다.

그러니까, 내용은 뭐냐면, 할 얘기도 없지만서도, 짐작대로 마시멜로는 "쾌락"이다. "행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지금 당장은 더 노력을 한다면, 마시멜로가 점점 더 커진다는 말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오늘 준비하고 노력하자." 엄마 잔소리의 책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딱 맞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 아는 뻔한 교훈이라도 활자화하면 힘이 훨씬 강해진다는 사실, 이 책이 증거다. 돈도 되고.

마시멜로 이야기 - 4점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한국경제신문

2007년 8월 7일 화요일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경제학으로 세상을 읽는 법

경제학 지식은 이상하리만큼 휘발성이 강하다. 2005년 2월에 사서 이미 한 번 읽은 책인데, 새 책처럼 즐겁게 읽었다. 이해했던 내용이 분명한데, 새삼 “이런 게 있었네!”하고 여러 번 감탄했다. 바보 같지만, 아무튼 책은 다시 한 번 재미있게 읽었다.

불완전한 시장과 정치적 보완책

이 책의 바탕을 이루는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면,

  1. 모든 사람이 늘 합리적 판단과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2. 시장 경제는 현존 최고의 시스템이지만, 중대한 문제점과 수많은 예외를 내포한다.
  3. 시장 경제는 효율을 추구하지만, 인간에겐 효율보다 인간다움이 훨씬 중요하다.

정도가 되겠다.

이 책은 "시장의 실패와 그 극복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인간적인 시장’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려면 '인간적인 정치'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이 책엔 보통 경제학 교양서에 비해 정치적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현실에서 경제와 정치는 따로 떼어내기 어렵고, 저자 스스로가 정치적인 사람이니까, 당연한 구성이다. 생각해보면, 아담 스미스가 가르치던 과목도 '정치경제학'이 아니었던가.

생각을 자극하는 즐거운 교양서

책 앞부분에서 기초적인 경제학 이론을 설명하긴 하지만, 이 책을 제대로 즐기려면 기본적인 시장의 원리와 한국의 현실 정치에 대한 이해가 있는 편이 좋다. 경제학 개론서 정도를 읽은 독자라면 큰 어려움은 없을 듯. 바보병 환자인 나도 재미있게 읽었으니까, 어려운 책은 아니다. 내용의 난이도를 교양서 수준에 걸맞게 적절히 조절했고, 설명도 무척 친절하다.

다만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고 할까? 논리적이고 좋은 문장이지만, 조금 긴 호흡이 제법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만큼 읽고 나면 지적 수준이 약간 올라간 듯한 뿌듯함이 있다. 역시 교양서는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맛이 있어야, 읽을 맛이 난다. 후후후.

경제학으로 세상을 읽는 법

정치적 현상과 사건을 경제학을 통해 해석하는 건 과연 경제학을 전공한 시사평론가 출신답다. 한번쯤 들어본 ‘요즘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다. 순수한 경제학 책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초판이 나오고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이야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으로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는데 좋은 교재임이 분명하다.

정치적인 내용이 많지만, 저자의 정치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큰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비교적 중도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며, 경제학 책이라는 본분을 잃지 않는다. 유시민 개인을 싫어하거나 보수 성향의 독자라도 크게 거부감이 들 만한 내용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그쪽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지만, 표지에 박힌 똘똘한 저자의 얼굴 때문에 절대로 안 읽을 듯. ^^

토론 진행자의 속풀이

이 책의 초판 발행일은 MBC의 <100분 토론> 사회자를 그만 둔 직후인 2002년 1월 28일. 저자는 집필기간이 1년 이상이라고 밝혔는데, 그러면 한참 <100분 토론>을 진행하던 시기에 쓴 책이라는 말씀. 목차만 봐도 당시 이슈들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진행자로서 토론을 지켜보며 꾹꾹 참았던 자기 의견을 이 책에 쏟아 부었다고 보면 맞지 않을까? 그 토론 좋아하는 양반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아마 이 책은 토론 진행자의 속병 치료용 저술이었는 지도.

정치인의 정책설명서

검색해보니, 저자가 정치 참여를 공식화한 개혁당 창당은 2002년 11월이었다. 그리고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요즘 새 책 <대한민국 개조론>이 출간됐다. 오호, 그렇다면, 이 책은 개혁당을 창당하는 저자의 출사표 혹은 정책 설명서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앞으로 이렇게 정치를 할 생각이니, 알아주십시오"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든 안하든, 이만큼 생각과 지식의 밀도가 높은 책을 쓸 능력을 갖춘 사람이 정치인이라는 건 국민들에 불행한 일이 절대로 아니다. 모든 정치인이 본인의 사상과 정치적 비전을 설명하는, 책다운 책을 써준다면 – 남의 손 말고 자기 손과 머리로 – 투표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될 텐데. 이미지만 팔아먹는 자서전 류가 넘쳐나는 꼴을 보고 있자면, 대의정치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얘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8점
유시민 지음/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