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8일 월요일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 위트 넘치는 경제학 사상史

국내에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로 번역된 책.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고, 국내에서도 아마 꽤 팔렸을 거다. 부제는 ‘현대 경제사상 입문 an introduction to modern economic thought’. 이게 제목이었다면 아마 베스트셀러는 어림없었겠지만, 내용은 부제가 정확하게 설명한다. 경제학의 역사를 중요한 경제학자와 학파를 중심으로 재밌게 잘 풀어낸 명저다. 저자의 촌철살인의 유머가 지루할 법한 내용에 좋은 양념이 됐다.

아마 <경향신문>에 실린 서평인 거 같은데, 어떤 교수님이 “저자의 자유주의적 관점이 거슬린다.”라고 쓴 구절이 기억난다. 내겐 아주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저자는 분명 사회주의적 이상에 대해 냉소적이다. 내 정치적 성향은 중도 – 혹은 국내 기준으로 중도 좌파? – 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내 기준에서 한 걸음 반 정도 오른쪽에 서 있다. 어쩌면 두 걸음 정도?

시장경제 자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마르크스에 대해선 가혹하리만큼, 인격모독에 가까운 표현도 서슴지 않지만, 그 외 여러 (시장) 경제학파에 대해선 비교적 공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각 장마다 각 학파의 학설을 그들의 입장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독자가 저자의 의도를 오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조금 더 읽어보면, 그에 대한 반론이 반드시 뒤따라 나온다. 이 책은 읽다가 중간에 그만두면 아니 읽은 만 못하다. 주장과 반론 모두를 읽어야만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불필요한 선입견을 피하려면 저자가 ‘아빠 부시’ 시절 백악관 경제 관료였다는 사실은 모르는 편이 낫겠다.

경제학 책치고는 무척 재미있고 쉬운 편이다. 그래프와 수식이 난무하는 일반 경제학 개론서를 절간 염불소리에 비하면, 이 책은 마당놀이라고나 할까. 경제학 이론뿐만 아니라, 경제학자의 개인적인 성장배경이나 역사적 배경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주 많다. 경제학 교수인 저자의 강의를 꼭 들어보고 싶을 만큼, 저자는 머리 아픈 경제학을 재미있게 포장하는 재주가 대단하다.

다만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경제학 개론서를 한권 옆에 끼고 보는 편이 좋겠다. 모르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다른 책과 인터넷을 찾아보며 읽었는데, 그냥 개론서를 읽는 것보다 학습효과가 10배 이상은 되는 듯. 학교에서 교양 경제학 개론을 들을 땐 좀체 이해가 어렵던 내용도 거짓말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학 신입생들의 경제학 개론 보조 교재로 이 책을 활용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걔네들이 경제학에 관심이나 있을까. 후후.

오랜만에 원서를 읽었는데,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애먹었다. 다 읽는데, 다른 책의 2배 이상 걸린 것 같다. 보통은 문장 내용만 이해되면 부사나 형용사는 모르더라도 사전을 찾지 않는데, 이 책은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어적 문장이 워낙 많은데, 그런 문장들은 긍정/부정이 형용사나 부사로 결정돼버리기 때문. 형용사와 부사를 무시하면 의미를 정반대로 이해하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생소한 경제학 개념에다가 해석까지 꼬여버리면, 참 힘들다. 게다가, 19세기 학자들 편에서는 19세기 단어를 사용하고, 당시의 원문들을 팍팍 인용한다. 멋있긴 하지만 나 같은 비숙련 영어사용자에겐 아무래도 버겁다. 위트 넘치는 문장이 정말 재미있긴 한데, 그 유머를 이해하는 시간이 꽤 걸린다. 진도가 너무 안 나가니 정말 재미있는 문장도 가끔은 짜증스럽다. 후후후.

하지만 어느 정도 영어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이 책을 거치면서 실력을 한 단계 높힐 수도 있겠다. 번역판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다면 번역판을 읽는 게 더 좋을 듯. 원문의 말장난을 어떻게 번역했을지 궁금하다.

굉장히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지만, 경제학 교양서가 처음이라면, <괴짜 경제학>이나 <경제학 콘서트>를 먼저 권하고 싶다. 그런 류의 비교적 쉬운 책을 읽고 난 뒤 경제학에 대한 더 큰 흥미가 생겼다면, 본격적인 경제학 개론서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면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paperback) - 8점
토드 부크홀츠 지음/Pl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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