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7일 화요일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애정을 담아 작가 지망생에게

'작가 되기'에 관한 책은 은근히 많은데, 그 가운데 이 책은 단연 눈에 띈다. (판형부터 남다르다!) 작가가 되려는 스누피에게 '유명' 작가들이 조언을 하나씩 하는 구성인데, 꽤 재미있고 분량도 200쪽 남짓에 불과하고 만화가 절반 정도이기 떄문에 반나절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다.

예비 작가를 위한 흔하지만 따뜻한 조언

기성 작가들의 조언 한 편은 길어야 3쪽 정도인데, 큰 도움이 되는 가르침부터 영 뜬구름 잡는 소리까지 조언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글을, 특히 소설을 쓰고자 하는 독자라면 대체로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예비 작가를 자극하고 격려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작가 지망생이라면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는 데 꽤 도움이 될 듯.

하지만 책 속 조언들이 아주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소설가를 꿈꾸며 '작가되기' 책을 열심히 읽은 당신이라면,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말들이 많다. 그걸 한 문장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고민할 시간이 있으면 한 자라도 더 써라. 다 써봐야 거절 당하겠지만 좌절하는 순간 소설가의 꿈은 영영 안녕이다.

이에 관련해서, 얼마 전 돌아가신 존 업다이크 옹 – 고인에게 평화를! – 의 말씀을 참고할 만하다.

정말 대단한 방법을 알고 있다면, 나 혼자만 알고 있을 겁니다. 안 그러면 업계가 너무 복잡해지거든요.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방법'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소설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에게는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나도 어릴 적엔 – 누구나 한때 그러하듯 –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른바 '작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의지박약'이라는 만성 질환 때문이었는데, 그때 만약 이런 조언들을 들었더라면, 적어도 노력은 더 해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책의 미덕 한 가지. 통독할 필요 없이 틈날 때마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무방하다. 고로, 화장실 비치용으로 아주 좋다.

누구신지?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던 건, 조언을 주신 '유명' 작가님들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작가 지망생을 위해 친절한 조언을 베풀어 주신 건 정말 고맙지만, 도대체 누구신지 알 수 없으니, 미심쩍은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내가 읽어본 작가는 시드니 쉘던 뿐. (아직 살아계셨군요.)

나 같은 속물들은, 기왕 조언을 들을 거라면 '진짜' 유명인의 말씀을 선호한다. 폴 오스터나 조이스 캐롤 오츠 같은 분이 한 말씀 해주셨다면, “오오 역시!!” 했을 텐데. 이건 뭐, 누구신지.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난 이 책보단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더 유익한 듯싶다. 미국식 장르문학 쓰기를 배우려면, 스티븐 킹의 책이 훨씬 좋다. 첨삭 원고까지 공개한 킹 사마에 비하면, 이 책의 조언들은 아무래도 약하고, 너무 짧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책의 공동 편저자인 몬티 슐츠는 <피너츠>를 그린 만화가 故 찰스 M. 슐츠의 아들이다. 그 자신도 소설가지만, 아마 ‘아버지의 아들’로 훨씬 더 유명하겠지. 책 분량의 반을 차지하는 스누피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빠를 잘도 우려먹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뭐, 그러면 또 어떤가? 어쨌든 자기 아빠고, 우려냄의 결과물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책을 읽기 쉽게 만든다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니까. 또 스누피는 보고 또 봐도 귀여우니까.

다른 작가들의 창작법이 궁금하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을 번역한 소설가 김연수 님은 아마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작품을 쓰는지 무척 궁금하신가 보다.<청춘의 문장들>에서도 작가들의 집필 방법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데뷔한지 16년이나 된, 그리고 이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진짜 유명 작가인 그도 자기 창작법에 대한 불안이 있는 걸까? 아니면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배려로 읽어야 할까?

머리말을 놓지지 마세요

아참, 이 책을 읽으실 분이라면 몬티 슐츠가 쓴 머리말을 꼭 읽으시길. 난 사실 이 책의 내용을 통틀어서 머리말이 가장 좋다. 아버지에 대한 회고담인데, 문학작품을 매개로 평생 아버지와 마음을 나누었던 저자의 추억이 부럽다. 무척.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6점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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