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9일 월요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 초보 마르크스주의자를 위한 지침서

마르크스주의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혁명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속한 사회-경제 체제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지는 아주 자-알 알지만, 마르크스가 약속한 “다음 세상”이 더 좋을 지는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세상을 알면 알수록, 좌파가 되지 않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현실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힘있는 소수가 힘없는 다수를 부당하게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 때, 마르크스의 근대 문명 비판은 좋은 길잡이가 된다. 우리의 불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려면, 마르크스에서 묻는 게 가장 빠르다.

도대체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이 책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설명하고, 사회 이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을 정리한 내용이다. 일반 노동자 대상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내용이 굉장히 쉽고 현실적이다. 다양한 사회주의 분파를 포괄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사회주의적 사회 인식을 이해하기에 좋은 교재다. 제목 그대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훌륭한 대답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올바른 노동자가 되는데 필요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주장이 명료하고 예상되는 반론을 재반론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논쟁법을 배우는 데도 좋다. <자본론>의 요약이 아니라, 당장 벌어지는 일들의 원인과 대처법을 설명하기 때문에 재미있고 유익하다. 상당히 적은 분량이지만 한 쪽도 버릴 것 없이 알차다. 소련이 건재하던 1980년대에 쓴 글이 2009년에도 유효할지 의심스럽겠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비판을 쓴 건 19세기 말이다. 5장 ‘사회주의자는 다음에 대해 무어라고 주장하는가?’를 읽다 보면, 역사가 거의 진보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이 상당히 원론적이고 강경하다는 점은 미리 각오해야 한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면 오직 혁명 뿐”이라는 입장이다. 꽤 세다. 좌파, 진보, 사회주의, 공산주의, 빨갱이 등의 용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은 분명 오해할 만하다. 아니, 이 정도면 단순한 오해가 아니다. ^^

늘 그렇듯 책은 읽는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기는 버겁지만, 지배계층이 억압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분석은 대단히 날카롭고 믿을 만하다. 4장 ‘지배전략’과 5장을 읽다보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보수세력과 정당, 정부, 재벌, 보수언론 들이 굉장히 교과서적 수법을 구사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 가운데 일부를 인용해 본다.

지배계급…은 법과 질서를 열렬히 외쳐 댄다. … 법이 지키는 것은 … 주민 전체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경제는 반드시 자본가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를 낳게 마련이므로, 법도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게 돼 있다. … 지배계급은 고위 법조인들을 꽉 잡고 있다. 판검사들은 대부분 자본가들의 자녀거나 사위다. .. 그 자신이 상층과 중간 계급 소속(이다). … 법은…가난한 사람에 맞서, 부자를…착취하는 자들을…지금 힘깨나 쓰는 자들을 보호해 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야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국가가 탄압을 강화하는 데 범죄의 실제 증가나 “민생치안” … “법과 질서”라는 구호만한 것은 없다. 범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범죄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 108쪽

반대 의견을 묵살하는데, ‘법 질서 수호’는 즐겨 사용되는 수법이다.

(애국심은) 국가의 힘과 권위를 강화하는데, 이는 피착취자에 대한 착취자의 지배를 유지하는 주요한 동력이다. … ‘우리 산업을 구하자’, ‘우리 나라가 다시 나아가도록 만들자’라는 말로 가득 차 있지만, 그건 ‘우리’ 산업, ‘우리’ 나라가 아니다. 둘 다 모조리 지배계급의 것이다. – 116쪽

애국심과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대기업 광고는 볼 때마다 섬뜩하다.

덧글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겁먹거나 흥분할 것 없이, ‘계급 없는 대안사회 건설’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사회주의자들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 모순적인 계급 구분 없이 모든이가 소중한 존재로 존중받는 세상일 거다. 누군들 그런 세상을 바라지 않을까? 문제는 항상 방법이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 8점
존 몰리뉴 지음, 최일붕 옮김/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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