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나는 비와 함께 간다 단평

나의 감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장황한 이야기와 강박적 악취미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

I come with the rain

근 몇 달 간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그나마 가장 낫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진 않지만, 그 덕분에 이도 저도 아닌 독특한 뒷맛이 흥미롭다. 게다가 이만큼 진지하고 대담하게 말을 걸어오는 작품을 외면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조연 배우들의 국적만큼이나 다채로운 이미지와 생각이 묘한 조합을 이루는 것 역시 약간 불편하면서도 재미있다.

그렇지만 흥행은 어려울 게 틀림없다. 월요일 오후 10시에 보긴 했지만, 관객은 나를 포함해 넷뿐이었고, 심지어 내 근처에 앉았던 커플은 중간에 나가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웹에 올라온 감상을 대충 둘러봤는데, 저주에 가까운 평까지 심심치 않게 보여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 같은 취향은 점점 더 소수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나 싫어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편집이 불친절하고 배경음악이 악취미적인 게 사실이며 전체적인 짜임새도 '웰메이드'와는 거리가 한참 멀긴 하지만, 고통과 구원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건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신약의 재해석으로 불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누아르-스릴러와 결합해서, 말초적 자극과 종교적 성찰 사이를 오가는 재밌는 작품이 됐다.

누군가는 '배우들이 영화를 살렸다.'라고 평했지만, 사실 배우들의 연기가 특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배우들의 밋밋한 연기를 주제가 살리는 인상이다. '고통과 구원'이 주제라면, 다들 조금 더 절박함을 표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클라인(조쉬 하트넷)이 느끼는 혼란과 고통은 가슴에 와 닿지 않고, '능력자'치곤 카리스마가 부족한 키무라 타쿠야는 미스캐스팅이란 생각마저 든다. 이병헌이 연기한 수동포라는 인물은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그 모호함과 뵨 사마의 안정된 연기 덕분에 상당히 매력적이다. 연쇄살인마 하스포드도 전형적이긴 하나 나름 매력적인 인물인데, 여주인공 릴리는... 감독 사모님이 여주인공을 맡는 건 좀 참아주셨으면.

그리고 라디오헤드는, 나도 팬이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작작 좀 우려드시길. 이 정도면 BGM 테러다.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나는 비와 함께 간다' 겉멋만 잔뜩 든 예술영화?
    2009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은 <나는 비와 함께 간다>였다. 주연배우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하여 관객들의 호응 역시 뜨거웠다. 분명 영화에 출연한 주연배우들 이름을 생각하면 무엇인가 큰 기대를 걸어도 될 만큼 중량감 있는 작품일 것 같다. 비록 이병헌, 기무라 타쿠야가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배우는 아니지만 아시아권에서 가장 큰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