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일 토요일

장정일은 잊지 않았다

소설가 장정일 씨의 작품을 모두 읽어볼 생각인데, 지금 떠오르는 단상을 기록해 본다.

이제 장정일 씨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그래서 1997년 이후 첫 소설인 <중국에서 온 편지>을 찾아 읽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의심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 작풍이 바뀌었을 뿐인지, 아니면 이젠 소설 비슷한 무엇밖에 쓸 수 없게 되었는지, 영 모르겠다. 다만 그 개자식들이 소설가 장정일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 상처는 이제 그저 흉터로만 남았을까, 아니면 곪아 터지고 썩어 문드러져 살점까지 몽땅 도려내야 했을까.

장정일의 대단한 팬은 아니지만, 그를 꽤 좋아한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이후 줄곧 호감을 품었다. 고1 겨울 방학에 읽은 <재즈>는 하늘을 걷는 사람을 직접 본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그때까지 제가 읽었던 그 어느 소설과도 달랐고, 또 재미있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돈을 주고 시집을 산 건 그게 두 번째였다. 점심 시간에 <햄버거>를 읽는 내게 친구가 물었다. “너 미쳤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새끼 천재야.”

그리고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발표되었다. 신나서 서점으로 달려갔다. 이미 다 수거된 뒤였다. 이유도 몰랐다. 책방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거 나쁜 책이야. 학생이 읽으면 큰일 나는 책이야” 하고 나를 나무라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읽지 못했다. 개자식들이 내게서 책을 빼앗았고 아직까지도 돌려주지 않았다.

모 공기업에서 경비원으로 일할 즈음, 장정일 씨는 문화일보에 <삼국지>를 연재했다. 경비원 생활이라는 게 지루함의 연속인데, 삼국지 덕분에 금요일 오후의 10분은 늘 즐거웠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알던 장정일이 아니었다. 장정일이 아닌 다른 누가 썼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그저 ‘삼국지’였다.

일전에 <장정일의 공부>의 독후감을 썼다. 그 책 말미에 ‘대중독재론과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공통점’이라는 소단원이 있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그 단원 어디에도 <거짓말>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저 “대중독재, 권력과 국민이 무언의 협정을 맺고 민주주의 체제 내 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현상”에 대한 설명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감상을 쓰는 도중에 문득 깨달았다. 장정일은 잊지 않았다.

소설가 장정일을 찌른 칼은 대중의 손에 들려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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